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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도청 장치예요.'
영화 '미스 슬로운'에는 '로보로치'라는 게 등장합니다. 바퀴벌레 형태의 '로보로치'는 초소형 반도체가 내장된 스파이죠. 로보로치는 상상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세계 각국의 연구진들은 로보로치처럼 초소형 반도체를 탑재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거든요.
대한민국은 반도체 강국입니다. 전체 수출의 20% 가까이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죠. 그런데 K반도체가 미·중 싸움의 한복판에 놓였습니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안보라는 '채찍'과 인센티브라는 '당근'을 양손에 들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업체를 압박하고 있죠. 중국은 지난달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 한국이 협력 파트너가 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반도체 공급절벽에 내몰린 세계 1, 2위 패권국이 한국에 '우리 편에 줄 서라'고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의 반도체 수급 상황은 어떨까요.
반도체 수급난으로 현대차와 한국GM 일부 공장이 가동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그러다 보니 자동차 부품업체들까지 다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와 맞서야 하는 국내 반도체 업계는 그간 지속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에 지원책을 요청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시 상황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뒷짐만 지고 있었죠.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를 안보 측면에서 챙기자 비로소 이제야 심각성을 느끼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겁니다. 왜 우린 이렇게 매번 한발 늦을까요.
고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5년 '솔직히 얘기해서 우리나라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경쟁력은 2류로 보면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탄식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K-반도체와 '4류 정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