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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묻을 땅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땅, 그런 땅을 찾고 싶네.'
영화 '명당'에서 땅의 기운을 점쳐 명당을 볼 수 있다는 천재 지관 박재상의 말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흥선 대원군은 1868년, 독일인 오페르트 일당이 충남 예산에 있는 아버지 남연군 묘를 도굴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개심에 불타 쇄국정책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됩니다.
임진왜란 때는 성종의 선릉과 중종의 정릉이 일본인에 의해 무참하게 파헤쳐지자 종전 후 조선이 맨 먼저 일본에 요구한 게, 왕릉을 훼손한 범인을 잡아 보내라는 거였습니다.
한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 중 하나가 '조상 볼 낯이 없다.'입니다. 사람의 혼백은 죽는 순간 혼은 하늘로 올라가지만, 백은 뼈에 남는다고 생각해 묘를 음택이라고 불렀지요.
그런데 어느 때부턴 가는 묘 터가 사람 사는 데 보다 더 중요한 곳이 돼 버렸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조부 묘가 부적과 식칼, 오물 등으로 2차례나 크게 훼손되는 풍수 테러를 당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는 세무 당국이 지난 3월 돌연 재단에 법인세, 증여세 3억여 원을 내라고 통지하더니 조상의 묘를 압류 조치했다며 악랄한 정치보복이라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산 자가 죽은 자를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정치에 지나치게 이용하는 측면이 있진 않을까요?
고위직에 오르거나 중대결심을 앞둔 정치인들은 곧바로 국립묘지를 참배하는데 어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먼저 찾고 어느 전직 대통령은 제외하는가가 뉴스의 초점이 됩니다.
모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2주기 되는 날입니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봉하마을이 한풀이와 분열의 장소가 되기도 했지만, 올해는 5·18의 광주처럼 서로 손을 잡는 화합과 용서의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을 떠난 이와 살아있는 이와의 아름다운 동거가 바로 우리가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일 테니까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조상묘와 정치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