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신용평가사 무디스·S&P·피치 국가신용등급 매겨
자금 조달, 외국인 투자 유치 등에서 유불리
‘국가신용등급 sovereign credit ratings’은 한 나라가 채무를 이행할 능력, 의사가 얼마나 있는지를 등급으로 표시한 것이다. 이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금리나 투자 여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정부의 채무 상환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여 등급이 결정된다. 쉽게 말해 개인 신용등급과 비슷하다.
#1 2024년 12월 14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프랑스 신용등급을 Aa2에서 Aa3으로 하향했다. Aa3는 신용등급 기준 3단계 수준이다. 그 이유는 몇 달간 지속되는 ‘정치적 분열로 국가 재정의 약화’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무디스와 함께 피치와 S&P도 앞서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낮춘 바 있다. 피치는 2023년 4월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던 연금개혁에 대한 사회적 혼란 재정 건전성 우려로 등급을 AA-로 한 단계 낮췄고, S&P는 2024년 5월 재정 문제를 들어 AA-로 내렸다.
#2 지난 1월 2일 신용평가업계와 금융투자업계는 추경으로 인한 국채 발행이 부채비율을 끌어올려 국가 신용등급을 끌어내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GDP 대비 부채비율은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국가 신용등급 평가에 최우선으로 보는 지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GDP 대비 부채비율은 2024년말 47%대까지 올랐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신용평가사는 일시적인 이벤트보다는 구조적인 채무상환능력 변화를 더 중시한다. 국고채 발행에 따른 정부 채무상환능력의 지표 악화는 국가신용등급 하방압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47% 수준인 GDP 대비 부채비율이 50%에 근접하면 글로벌 신평사들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에 고민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3 2024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4,156억 달러로 세계 9위 수준. 적지 않은 숫자이지만 IMF가 권하는 6,810억 달러에는 모자란다. 지난 2021년 4,600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이후 3년 동안 줄고 있는 것은 글로벌 경제환경의 변화도 있지만 무엇보다 최근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450원을 넘어 1,500원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시장 안정과 환율 방어를 위해 당국은 보유외환을 시장에 풀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S&P, 피치의 등급으로 각 국가는 국제금융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 외국인 투자 유치 등에 유불리를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이 세 개의 글로벌 평가사의 등급은 국제시장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딱지’가 된다. 한 나라의 경제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국가신용등급 급락
2018년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IMF위기 즉 국가부도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경제위기를 감지하고 비상조치를 주장하는 한국은행 통화정채팀장 한시현(김혜수), 다른 해결책을 찾는 재정국 차관(조우진), 금융맨이었지만 위기 시그널을 감지하고 투자자를 모아 역베팅해 거금을 손에 쥐는 윤정학(유아인), 친구와 작은 공장을 운영하며 미도파백화점 납품에 성공했다며 기뻐하는 갑수(허준호). 그러나 국가는 부도를 맞고, 극중 유아인은 엄청난 돈을 번다.
IMF로 당시 한국의 30대 재벌 중 11개가 사라졌고 실업률은 최대 8.4%, 외환은 바닥이 났다. 기업의 줄도산과 더불어 은행마저 문을 닫았고 수많은 직장인이 실업자가 되었다. 700원대의 달러 환율은 한순간에 1,900원으로 상승했다. 물론 이때도 돈을 번 ‘운 좋은 사람’은 있었다. 필자의 친구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당시 그 친구는 모 신문사 사진기자 직을 그만두고 호주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다. 8월경 사표 내고 퇴직금을 받고, 은행 적금, 예금은 물론 살던 아파트도 팔아 모두 달러로 바꾸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나니 1997년 11월 초. 그리고 보름도 안되어 국가부도가 선언되었다. 그러자 이 친구가 갖고 있던 달러가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졸지에 원화 가치로 무려 3, 4배가 상승했다. 그 친구는 고민하다 이민을 연기하고 대신 자신이 판 아파트를 다시 샀다. 그것도 거의 30% 가격에 2채를 사고 은행에 달러 예금을 했더니 이자가 무려 28%에 달했다. 그렇게 3년 뒤, 그 친구는 건물 하나, 아파트 2채 등을 보유한 자산가가 되어 지금도 모임 때면 지갑을 연다. 솔직히 부럽지만 그것도 다 ‘운과 선택’이다.
다시 1997년 11월 22일로 되돌아가보자.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무분별한 외채를 쓰다 과도한 부채에 시달렸고, OECD 가입이라는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정부는 외환 위기에 등한했다. 1997년 초 305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는 1997년 10월 20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달러 외채는 무려 1,530억 달러에 달했다. 외국 투자사, 금융사는 한국의 외채 상환 능력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국제신용평가사들이다. Moody’s는 1997년 12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자등급 Baa2에서 정크등급 Ba1으로 4단계나 강등했다. 이는 국가 채무를 이행 능력에 심각한 의문이 있다는 뜻이다. S&P와 Fitch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4~6단계씩 급격히 하향했다.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자 외국 투자자본은 일거에 한국에서 빠져나갔고 한국 정부는 물론 기업 누구도 외국 자본을 차입할 수 없었다. 정부는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 그 뒤의 과정과 고통은 누구나 다 기억하고 있다.
한 나라의 채무 이행 능력과 의사가 있는가?
개인신용등급의 경우 하위등급은 은행 대출은 물론 제2금융권 대출도 힘들며, 카드 한도 금액도 반년마다 줄어들고, 카드 발행은 물론 심지어 통장 개설도 어렵다. 겨우 통장을 개설해도 1년간은 1회 30만 원으로 입출금이 제한된다. 요즘은 금융기관이 개인의 여신을 다 파악하고 있어 신용등급은 금융기관이 다 공유하고 있다. 개인 수입과 지출, 은행 예적금, 은행대출과 카드 사용액, 단기카드대출 및 카드론, 기타 대출 및 통신료 및 국세와 지방세 연체 등을 합산해 매긴다.
국가신용등급도 이와 같은 방식이다. 경제와 정치적 충격이 발생했을 때 국가 공공재정 시스템의 지속가능성과 경제 성장의 지속 여부 등 경제 시스템을 우선 평가한다. 그리고 1인당 GDP, 정부의 세수와 지출 비교에 의한 성장 여력도 체크한 후 외환보유고와 순채권국 혹은 채무 여부, 이를 분석해 국가의 부채 상환능력을 체크한다. 다음은 국가 재정이다. 수출입 등과 세수, 지출, 국가 부채의 구조와 만기 현황을 체크한다. 마지막이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신뢰성 그리고 환율 위기 등의 대응능력이다. 이름만 다를 뿐 개인 신용평가 기준과 거의 동일하다.
국가신용등급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 Investors Service), S&P(S&P Global Ratings), 피치(Fitch Ratings)의 등급을 받아 국제금융 시장에서 자금 조달, 투자 유치 등에 유불리를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이 세 개의 글로벌 평가사의 등급은 국제시장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기준으로 한 나라의 경제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 19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 당시, S&P 등급은 AA-에서 B+로 10단계 급락, 14년이 지난 2015년에야 외환위기 이전 AA로 회복했다. 이처럼 한 번 떨어진 신용등급을 올리기는 대단히 어렵다.
현재 12.3 비상계엄 이후 한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해 세 개의 국제 신용평가기관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S&P와 피치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탄핵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장기화할 경우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무디스 역시 “정치적 긴장과 경제활동 지장이 장기화할 경우 대외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빨리 정치적 안정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이 상태에서 무디스 등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낮추기 시작하면 그 부정적 파생력은 상상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2024년 수출액은 2023년에 비해 소액 증가했다. 그것도 반도체와 자동차가 이끌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집권 이후 미국의 정책은 단순하다. ‘미국 퍼스트’이다. 높은 관세, 한국에 대한 방위비 증가 압력, 미국과 일본, 대만의 반도체 기술과 투자와 우위, 중국의 압도적인 물량공세와 우리와의 좁혀지는 기술 격차, 내려갈 줄 모르는 환율, 환율상승으로 인한 원자재값 인상과 물가상승과 내수 부진 등등이 겹쳐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12.3 비상계엄 이후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S&P와 피치 등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탄핵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도 “장기화할 경우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무디스 역시 “정치적 긴장과 경제활동 지장이 장기화할 경우 대외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각국과 기업들의 저승사자, 3대 국제신용평사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과 공신력을 갖춘 3개의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은 세계 신용평가시장의 약 95%를 장악하고 있다. S&P는 1860년, 미국 뉴욕에 설립되었다. 각국의 신용등급 평가, 기업과 금융 채권에 대한 신용등급을 제공한다. 2011년 S&P는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춰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특히 S&P는 다른 평가사와 달리 신용등급 평가에 정치적 환경을 많이 반영한다. 일테면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권에 대해 정권 기반이 취약하다며 이탈리아 신용등급을 낮춰 결국 베를루스코니 수상이 두 달 뒤 사임하기도 했다.
1909년 미국 출판업자 존 무디가 설립한 무디스는 투자자들에게 신용 위험 관리와 데이터 제공, 시장 심층 분석에 집중한다. 특히 무디스가 부정적 평가를 하면 주식과 채권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회사의 명성은 1929년 미국 경제공황 때이다. 당시 무디스는 공황이 터지기 직전 몇몇 회사에 투자적격을 부여했는데 이 회사들은 경제공황에도 살아남아 이후 무디스는 그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1924년 설립된 피치는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자산 관리, 은행, 보험 분야에 중점을 두며 신용등급 평가 외에도 금융시장 분석도 제공한다. 특히 피치의 평가는 정부발행 채권에 등급을 매기는데 이는 국제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또 피치의 특징은 정치적 상황보다는 경제상황을 더 중요시한다.
그러나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이 세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반발도 있다. 2010년대 유렵연합에서 이들의 평가기준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바.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 세 기관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개별 기업에 대한 평가를 따로 하지 않지만 국가신용등급의 상승, 하락에 따라 그 국가에 속한 기업도 영향을 받기에 국가는 물론 기업들에게도 거의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이다.
S&P는 최고등급 AAA를 11개국에 부여하고 있다. 호주, 캐나다, 덴마크,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스웨덴, 스위스, 미국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AA+로 UAE, 벨기에, 아일랜드, 카타르 영국과 같은 등급이다.
피치의 최상위등급 AAA는 호주, 덴마크,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스웨덴, 스위스이다. 그 아래 등급인 AA+는 미국, 오스트리아, 핀란드, 캐나다, 뉴질랜드이고 한국은 4단계인 AA-로 쿠웨이트, 벨기에, 영국과 같다.
무디스의 최고등급 Aaa는 호주, 캐나다, 덴마크,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스위스, 미국이다. 두 번째 등급인 Aa1는 오스트리아, 핀란드이고 한국은 3단계인 Aa2로 UAE와 같은 등급이다.
[글 권이현(라이프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7호(25.02.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