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외 순수 채권형 펀드에서 지난 한 달간 4000억원이 넘는 투자자금이 이탈했다. 지난 6개월 동안은 총 3조5000억원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 영업점에도 국고채 30년물이나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의 매도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의 매수세도 크게 꺾였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관들은 연말 기준으로 운용 성과를 평가받게 된다"며 "예상치 못한 금리 급등으로 이미 채권 투자 손실을 크게 입은 기관들이 성과 평가를 한 달 앞두고 채권 비중을 늘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투자 비중이 높은 글로벌 채권 펀드들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신얼 현대증권 연구원은 "지난 9월 이후 한국에 투자하는 글로벌 채권 펀드에서 총 117억5000만달러가 빠져나갔다"며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 시 이들 펀드는 국내 채권을 매도해 현금을 확보할 수밖에 없으며 자연히 추가 매수 여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3%대를 돌파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이후 계속해서 3%대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6월 최고인 3.12%에 바싹 다가선 수준이다. 상반기 버냉키 쇼크 당시 일시적으로 치솟았던 금리가 다시 하락해 단기간 내 안정을 되찾았던 양상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시장에선 "국고채 금리 3%대가 새로운 박스권의 하단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이재승 KB투자증권 채권분석팀장은 "국내외 경기가 호조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12월 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우려도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라며 "채권 현물 및 선물에 대한 외국인 매도세도 진행되고 있어 저가 매수보다는 채권 비중 축소를 통한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채권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일단 종합자산관리계좌(CMA)나 머니마켓펀드(MMF) 같은 단기 금융상품으로 흘러들어 갔다. 최근에는 시니어론 펀드나 하이일드 채권 투자에 대한 투자자들 문의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주식 비중을 높이기엔 아직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고 채권 금리 상승에는 대비해야겠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변동금리부 상품이나 만기가 짧아 금리 리스크가 크지 않은 상품으로 갈아타고 있는 것이다.
시니어론 펀드란 변동금리부 대출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시장 금리가 상승할 경우 투자자가 받는 이자수익도 자연히 증가하도록 구조화돼 있다. 최근 증권사들이 많이 내놓고 있는 하이일드 펀드 대부분은 글로벌 고금리 채권에 투자하면서도 만기를 3~6개월 정도로 짧게 가져가 금리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채권형 상품은
전문가들은 이들 자금이 중장기적으론 주식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리 상승기엔 채권보다 주식 투자 매력도가 훨씬 높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금리 하락세가 종지부를 찍으면서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혜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