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은 큰 것만 보는 자리가 아닙니다. 현장감각을 바탕으로 디테일도 잘 살펴야 하죠. 그래야 은행을 위태롭게 하는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첫 여성 은행장의 타이틀을 차지한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내정자(57)가 밝힌 ’은행장의 자세’이다.
그에게 행장 승진의 낭보가 날아든 23일 그의 사무실에서 단독으로 만나 1시간여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나즈막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35년간 기업은행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점과 감회를 차분하게 털어놨다.
행원 1만3000여 명과 중소기업금융을 책임져야 하는 그에게 우선 은행장이 어떤 자리인지 물었다. 권 행장은 "은행장은 경제 흐름을 비롯해 거시적인 것도 잘 봐야 하지만 영업점ㆍ창구의 디테일한 것과 미시적인 것도 잘 챙겨야 한다"며 "몇몇 사례에서 보듯이 창구를 잘 살피지 못해 발생한 사고ㆍ실수가 은행 전체를 위태롭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디테일을 챙기는 데는 현장경험과 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해온 것을 전달했다.
권 행장은 연세대 영문과 졸업 후 1978년 중소기업은행(기업은행 전신)에 입사했다. 35년여간의 뱅커생활 중 20년 이상을 영업점에서 보냈다.
그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으며 시쳇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며 "거액을 예금한 후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채업자부터 사기꾼까지 모두 상대해봤다"고 회상했다. 권 행장은 "제가 강조하는 덕목은 현장"이라며 "은행은 고객을 기쁘게 해야 하고 은행원은 현장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권 행장은 은행 내에서 ’첫 여성 1급 승진’, ’첫 여성 지역본부장’ 등과 같은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서울 동대문지점에서 창구 업무로 은행일을 시작한 그는 당시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외환ㆍ여신 등으로 업무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앞으로 기업은행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포부를 물었다. 그는 "예전에는 은행에 있어 성장성ㆍ수익성ㆍ건전성이 핵심이었는데 지금은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도 매우 커졌다"며 "둘 사이에서 어느 쪽에 쏠리지 않고 감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 행장은 향후 무리하게 외형을 키우기보다 내실을 다지겠다는 뜻도 전했다. 그는 "신사업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그동안 제기돼왔던 과제, 계획돼 있던 것 등을 차분하게 점검하고 해결해 나갈 것"이라며 "내년에는 전산개편, 소비자보호, 영업 등 기업은행에 중요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준희 현 기업은행장의 성과도 이어받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조 행장님이 추진하는 중요한 것들이 많아 이것을 이어받아 안정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며 "새로운 색깔을 드러내며 비용을 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권 행장은 조준희 행장이 추진해온 문화콘텐츠금융, IP금융, 문화 마케팅 등을 꾸준히 이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바젤3 적용에 따라 자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역마진 경쟁이 아닌 질적인 경쟁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권 행장은 은행 내에서 ’조용한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절대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직원들을 나무랄 때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이렇게 하면 실망스럽습니다’는 말로 대신한다. 차분해서 오히려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는 게 직원들 반응이다.
권 행장은 남편, 아들, 딸 등과 네 식구의 가정을 이루고 있다. 영업현장을 누비며 행장의 자리까지 오른 ’강단 있는 사람’이지만 집에서는 가족을 위한 장을 보며 ’살림’을 첫 번째 일로 여기는 스타일이다.
그는 "제가 첫 여성 은행장이 된 것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 같다"며 "우리나라 절반이 여성이고 기업은행 직원의 절반도 여성인데 그들에게 꿈과 희망이 된 것 같아 좋다"고 말했다. 권 행장은 "직원들이 바랐듯이 내부승진으로 행장이 되는 케이스를 이어갔다는 데 의의를 둔다"며 "노조와도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권선주 행장은…
△1956년생 △경기여고 졸(1974년) △연세대
[김규식 기자 / 이덕주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