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자증권 인수전은 옛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2차관을 지낸 선배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지난해 3월까지 국무총리실장(장관급)을 지낸 후배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간 자존심 싸움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두 금융지주 모두 은행쪽에 80%정도 쏠려 있는 조직구조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받아 온 터라 예비입찰 때부터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자기자본이 3조4728억원으로 대우증권에 이어 2위지만 자산규모는 29조1670억원으로 1위증권사다. 따라서 이 두 회사중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는 쪽은 기형적인 조직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임 회장이 전투에 임하는 전략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인수에 성공한 임종룡 농협금융회장은 시장에서 지분가치가 마이너스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금융저축은행에 대해서도 플러스 가치를 매겼다. 반면 우리투자증권의 가격을 깎았다. 즉, 우리금융 측이 요구한 패키지 입찰에 충실하게 접근한 것이다.
이에 반해 고배를 마신 임영록 회장은 인수 후에 증자를 고려해야 하는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금융저축은행은 포기하고, 우리투자증권 개별 입찰에만 1조2000억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이 같은 결과를 놓고 금융권에서는 임종룡 농협금융 회장의 철저한 준비와 뚝심의 승리라는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반면 인수전 내도록 이사회 눈치를 보며 소극적으로 대처한 임영록 KB금융 회장의 행태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번 인수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른 형국이다. 얼핏보면 임영록 KB금융회장이 완패한 모양새지만 아닐 수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 임영록 회장은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을 벗어나면 포기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곤 했다.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인수합병은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던 것이다.
특히, 애초부터 인수 매력이 떨어지는 우리자산운용·우리아비바생명·우리금융저축은행을 끼워 파는'1+3 패키지 매각'보다는 우리투자증권 자체만 인수하기를 원했다.
사실 '1+3 패키지'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묶음 가운데 매력적인 물건은 우리투자증권 뿐이다. 나머지 물건들은 개별적으로 매각이 어려울 수 있어 우리투자증권에 끼워서 파는 모양새 였던 것. 따라서 임영록 KB금융 회장은 우리투자증권만 샀으면 하는 게 속내였을 테고 이게 안더되라도 차선책(다른 증권사 인수)을 선택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시장에는 현재 동양증권과 현대증권이 매물로 나와 있다. 더욱이 올해 하반기에는 대어급 KDB대우증권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물건들은 우리투자증권에 견줘 뒤처지지 않는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이미 거액의 인수자금을 투입한 농협금융은 더 이상 이들 매물에 관심을 표명할 여력이 없다.
그렇다면 국내 금융지주사들 중에서 이들을 살 수 있는 유력한 후보는 KB금융이 되는 셈이다.
어쩌면 임영록 KB금융 회장은 내심 '부담되는 매물까지 더 안느니 차라리 잘 됐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에서는 벌써부터 KB금융이 소송 리스크를 안고 있는 동양증권을 싼 가격에 인수 한 뒤 향후 KDB대우증권까지 인수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은 우량 매물인데 비해 가격이 저렴한 동양증권 인수 후 상황을 주시하면서 대우증권이나 현대증권 등 또 다른 대형 매물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시장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동양증권의 매각가격은 2000억원~3000억원이다. KB금융 입장에서는 우리투자증권 본입찰에 1조2000억원을 제시한 것을 감안하면 동양증권을 인수하고도 다른 증권사 인수여력이 충분하다.
[류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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