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折箭之訓(절전지훈)’이란 한자성어가 있다. 가는 화살도 여러 개가 모이면 꺾기가 힘들 듯, 여러 형제나 동료가 협력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 SNB 김승석 사장은 "아직은 회사가 걸음마 단계라며 선순환구조를 만들이 위해 늘 최선을 다한다"고 다짐한다. |
이 업계에 먼저 발을 들인 사람은 형인 김승석(45세) 대표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승석 대표의 원래 꿈은 교직에 근무하는 거였다. 하지만 개인사정상 지난 1996년 현대그룹에 입사한다.
현대그룹 내 IT계열인 현대정보기술로의 발령을 내심 바랬지만, 운명처럼(?) 현대건설산업으로 가라는 통보를 받는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건설업종으로 발령이 나면서 얼떨떨했다”면서도 “하지만 당시 자신감이 충만했던 터라 여기서 열심히 일해 전문 CEO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잘 팔리는 상품만 손댔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
하루가 멀다 하고 새벽까지 야근을 자청한 그는 사회 초년 시절 상업, 주상복합, 오피스텔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 팀에서 근무했다. 아파트 값이 자고일어나면 뛸 정도로 부동산 활황기였지만, 그 외의 상품들은 철저히 외면을 받던 시절이다.
그러다보니 김 대표가 속한 팀은 상대적으로 ‘찬밥’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장자체가 아파트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회사의 조직 개편이 있을 때마다 우리 팀은 희생양이 됐다”면서도 “생각해보면 지금의 자생력은 그 때 갖게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다 IMF 사태가 터진다. 하필 김 대표가 분당에서 주거용 오피스텔 358실을 팔 때였다.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600번 이상을 팔다 말다를 반복했고, 이는 당시 국내 경기가 ‘바닥’이었음을 증명했다.
“국내 건설업계 최초 해외 판촉을 강행했죠. 힘든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거듭된 고민 끝에 당시 김 대표(당시 대리)는 해외에 팔아 보는 건 어떻겠냐고 팀장에게 제안했고, 팀장은 “회사에 너 같은 녀석도 한둘은 필요하다”며 국제전화를 연결해줬다.
물론 첫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해외 판촉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카탈로그 제작부터 교포 섭외, 호텔 사업설명회까지 ‘맨 땅에 헤딩’을 시작했고, 6박7일 동안 2개 나라(캐나다, 미국), 4개 지역(토론토, LA, 샌프란시스코, 뉴욕)을 도는 강행군도 펼쳤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차에 50여 건의 계약이 나왔다. 2차 때는 무려 150건을 팔고 돌아왔다. 외환위기 시절이라 한국의 주거용 오피스텔을 계약한 교포들은 환차익까지 얻을 수 있어 대체적으로 만족해했다.
이후 2001년 마케팅으로 팀을 옮겨 대한민국 부유층의 상징 ‘삼성동 아이파크’의 분양을 끝으로 2003년 8월, 삼십대 중반인 김승석은 한 회사의 ‘대표이사’로 거듭난다.
“그때는 제가 잘난 줄만 알았습니다. 현대가(家)의 백 그라운드는 보이지 않았어요.”
현대산업개발 근무 시절 맡은 사업마다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막상 사업체를 꾸리고 나니 좀처럼 일이 들어오질 않았다. 결국, 남양주 도농동 소재 주상복합아파트 시행일에 손을 대면서 그는 깊은 나락으로 고꾸라진다.
김 대표는 “집에 폐인처럼 있는 제게 나이 지긋한 어머니께서 밥값하라며 만원을 주시는 데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며 “정신차리고 다시 일어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회고했다.
시행사업 실패 후 그에게 남은 것은 250억 원의 빚이었다. 이후 분양대행으로 업종을 변경하면서 빚은 모두 갚았지만, 당시의 마음고생은 하면 안 될 생각까지 하게 만들곤 했다.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일은 없다했던가, 그에게 뜻밖의 연락이 왔다. 현대산업개발에서 분양대행 의뢰가 온 것. 문제는 악성 미분양으로 골머리 썩던 ‘부산 수영만 아이파크’였다는 점이다.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김 대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팔아보겠다”고 일을 받아들였다. 고급 주거시설에 오랜 경험이 있던 차라 김 대표는 “할인도 필요 없다. 여기서 살아야하는 이유를 줘야한다”며, 바로 판촉 전략구상에 돌입했다.
“이 단지를 어떻게 팔아야할까. 10시간 동안 단지 앞 편의점 의자에 앉아 고민하다 무릎을 쳤습니다. 바로 ‘야경’을 상품화하면 될 것 같았어요.”
김 대표는 바로 견본주택을 오후에 개장하는 ‘나이트 마케팅’과 ‘무드 마케팅’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그 결과 1년 넘게 악성미분양으로 남겨진 ‘수영만 아이파크’는 몇 개월 만에 모두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한다.
이후 미분양 마케팅을 연달아 성공시킨 김 대표는 사업수주 때문에 외부로 동분서주했다. 그러다보니 내부를 챙길 누군가가 절실했다. 그래서 고려대 졸업 후 고시를 준비 중이던 친동생인 김호석 씨를 영입한다.
↑ "盡人事得天命: 인간으로써 해야 할 일을 다 하면 하늘을 얻는다" 김승석·호석 형제가 버릇처럼 되새기는 말이다. |
서로 보완관계가 형성되니 사업은 더욱 안정을 찾아갔다. 시작을 형인 김승석 대표 맡았다면, 완성은 김호석 대표 몫이다.
김호석 대표가 합류하면서 신규분양 물량도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첫 프로젝트가 ‘군산 아이파크’였다.
“우리 일은 아파트를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감동 시키는 것”
군산 아이파크를 팔기 위해 또 고민이 시작됐다. 성격 다른 김승석, 호석 형제지만 “어떤 마케팅을 펼칠 것인가, 이것이 대행사의 역할”이라는 신념이 같았다.
때마침 현대조선소가 군산으로 이전한다는 낭보가 형제에게 전해졌다. 이들은 군산에 들어서는 아파트를 울산에서 파는 기이한(?) 전략을 구사해 단기간 완판에 성공했다.
“장사 잘되는 식당, 재료비 아끼지 않는다.“
SNB 사장실 한쪽 벽에는 ‘盡人事得天命’이란 고사성어가 적힌 액자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待(기다릴 대)자가 아닌 得(얻을 득)자다.
인간으로써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 대신 인간으로써 해야 할 일을 다 하면 하늘을 얻는다는 ‘진인사득천명’으로 바꾼 것. 수동적 자세보다는 능동적 자세로 업무에 임하겠다는 김승석, 호석 형제의 의지 표명인 셈이다.
SNB는 최근 현재 시공이 한창인 잠실롯데월드 슈퍼타워의 컨설팅을 수주하면서, 컨설팅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때문에 컨설팅업무에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는 ‘논리개발’을 위해 북경, 상해, 홍콩, 라스베가스, 도쿄로 출장을 자주 나간다. 배움을 위한 비용은 아끼지 않는다.
“부자들은 가치가 있으면 투자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단돈 100원도 쓰질 않는다”고 말하는 김승석, 호석 대표는 “지금까지 판매가 어렵다는 최고층·대형·고급 등의 수식어가 붙은 아파트를 분양에 성공시켜 온 만큼 어떤 주거상품을 맡더라도 자신있다”고 밝혔다.
↑ (주)SNB가 분양대행을 수주하고, 3월 7일 그랜드 오픈을 앞 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The W(더 더블유)’ 투시도 |
김호석 대표는 “전체 가구의 98%에서 바다 조망이 가능하며 부산 도심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며, “특히 70% 정도의 가구는 부산의 대표적 야경인 광안대교 조망이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김승석 대표는 “지난해 말 개관한 홍보관을 방문한 고객이 4만여 명을 넘었고, 이 중 구입의사를
[매경닷컴 조성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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