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04월 21일(06:03) '레이더M'에 보도 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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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예년보다 상당히 이른 시기에 시작된 상반기 정기평가에서 일부 업종에 속한 기업들과 구조조정 기업들을 대상으로 칼을 빼들었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신용 위험 확대로 회사채 시장이 다시 경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1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지난 17일 한국기업평가는 대우건설, 대림산업 등 17개 주요 건설사에 대해 정기평가(선조정 포함)를 실시해 이 중 6개 건설사의 신용등급과 4개 건설사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15개 건설사 가운데 7개 건설사의 신용등급과 등급 전망을 조정하는 등 대규모 등급 변경이 이어지고 있다.
한신평의 하향 조정 대상 건설사는 이번 정기평가에서 신용등급이 A로 내려간 대우건설을 포함해 GS건설, 동부건설 등이다. 한기평은 한신평보다 조정 규모가 더 크다. 한기평 정기평가에서만 두산건설, 롯데건설, KCC건설, 코오롱건설의 신용등급이 각각 한 단계씩 등급이 떨어졌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구조조정 중인 대기업 계열사에 대한 등급 조정으로 포문을 열었다. 나신평은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을 BBB-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하고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하는 한편 현대엘리베이터(BBB)와 현대로지스틱스(BBB)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렸다.
앞서 신평사들은 해외 프로젝트와 국내 주택사업에서 대규모 부실이 표면화된 건설사들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드러내왔다. 지난해 GS건설과 SK건설을 필두로 대우건설 등 대형사의 어닝쇼크가 이어지면서 일부 건설사들은 정기평가에 앞서 선제적으로 등급이 조정되기도 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이번 상반기 정기평가에서 건설사들의 신용등급에 대한 무더기 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시장에 많이 있었다"면서 "건설사들의 정기평가가 신속하게 진행된 것은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신평은 정기평가를 실시한 건설사들에 대해 현금흐름 대비 순차입금 비율, 부채비율 등 '하향 트리거'를 제시해 향후 등급 방향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기로 했다.
나신평이 현대그룹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조정하면서 한신평이 현대그룹 계열사에 부여한 BB+등급과는 다소 격차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최대 2계단의 차이가 있고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제시돼 향후 추가적인 하향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많다.
전문가들은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해 촉발될 수 있는 신용시장 경색에 대해 조심스럽게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STX와 동양사태 만큼은 아니겠지만 이미 한 번 크게 당한 투자자들이 과도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현대그룹과 동부그룹의 계열사 가운데 투자적격 마지노선인 BBB-등급에 걸쳐 있는 곳들이 많아 추가적인 등급 하향이 실시되면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 한신평이 현대그룹을 투기등급으로 내렸을 때도 시장에 큰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시장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한 증권사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취약업종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면서 "회사채 시장이 현재까지 큰 고비 없이 잘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디폴트와 같은 사건이 발행하지 않는 한 표면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혁재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들의 결산이 완료된 시점이 등급 하향이 필요한 기업들에게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적기"라며 "투자자 입장에서 당장은 고통이 커질 수 있겠지만 대대적인 등급하향에 따른 불확실성 해소는 시장 정상화를 앞당기고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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