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자 자문은 M&A(기업 인수합병)와 증권ㆍ금융의 요소가 모두 담겨 있는 '종합 예술'입니다."
부동산 법률자문계의 '마이더스의 손' 한용호(44)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최근 매일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부동산 전문 변호사가 동네 복덕방 같은 자질구레한 업무만 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며 "딜(Deal) 구조를 짜고 매매ㆍ인수자 간 갈등을 중재하는 등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변호사의 조율 능력에 따라 수익률과 계약 성사 여부가 갈릴만큼 그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고객들에 '마약' 별명 얻어…3조 딜 독차지
부동산 법률자문이라고 하면 건물을 직접 사고 파는 계약과 관련한 위법 사항을 검토하는 업무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당 건물을 보유한 회사의 지분을 사들이거나 사업부만 인수하는 방법 등 다양한 거래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변호사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한 변호사가 주력하는 분야는 기업ㆍ펀드의 부동산 거래 및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법률자문 업무다. 그는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 컨소시엄의 런던 로프메이커 빌딩 인수(거래액 약 8000억원) 건 등을 포함해 총 19건, 3조539억원 규모 부동산 거래 자문을 싹쓸이했다. 한 변호사가 자문을 맡은 건은 예외없이 8~12% 가량의 안정적인 투자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그가 이끄는 세종의 부동산 자문그룹 역시 해외부동산 분야에서 국내 로펌 중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韓銀 그만두고 '늦깎이 변호사' 길 선택
한 변호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 입사해 평범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입사 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금융시장 질서를 다시 세우는 데 이바지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33살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법조인의 길을 택했다. 그는 "어렵게 입사한 직장을 나가 사법고시를 준비한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며 "단순히 숫자를 다루는 업무보단 사회적 가치에 기여할 수 있는 업무를 하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근 시장의 분위기는 한 변호사가 법조인의 길로 들어선 당시 분위기와 흡사하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 실적부진에 빠진 기업들이 자산 매각에 나서면서 헐값의 부동산 매물이 쏟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는 "부동산 투자는 펀드 입장에선 주식 투자처럼 수익률이 높진 않지만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대체투자와 크로스보더(cross border) 딜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는만큼 부동산 투자 자문의 수요도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한나라당 당사ㆍ로프메이커 인수 건 등 성사시켜
한 변호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딜로 국내 최초 실물부동산 펀드를 조성해 여의도 옛 한나라당 당사를 매입한 건을 꼽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 대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부동산매각추진위원회장을 맡았던 시절이다. 그는 한나라당 직인이 찍힌 계약서를 보여주며 "이럴 줄 알았으면 박근혜 대통령과 사진이라도 찍어 둘 걸 그랬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 변호사는 난이도가 높은 해외 투자 건을 매끄럽게 성사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자문을 맡았던 런던 로프메이커 빌딩 인수 건이 대표적 사례다. 해당 딜에는 한국의 이지스자산운용 외에도 프랑스 악사(AXA)그룹, 중국 국부펀드 징코트리(Ginko Tree)가 참여해 당사자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한 변호사는 절세를 위한 특수목적회사(SPC)를 다층 구조로 설립하고, 3개국 투자자의 요구사항을 절충하는 등 딜 전체를 진두 지휘해 해당 건을 성사시켰다. 그는 "하루에 보통 100통씩 오는 이메일이 300통이 넘게 왔다"며 "영국 파이낸셜타임즈에 자세히 소개될 만큼 한국 펀드가 현지서 주도적 역할을 해낸 최초 투자사례"라고 말했다.
◆ 성공비결 '균형감각'…남북경협 기여하고파
한 변호사가 뽑은 자신의 성공비결은 바로 '균형감각'이다. 무조건 고용인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법조인으로서 중립적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것. 인수자측에 고용됐다면 매도자측, 금융당국의 입장까지 함께 배려하면서 거래를 성사시키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시간당 무려 48만원을 받는 '을'인 변호사의 입장에선 쉽지 않은 태도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방향이라도 법률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으면 '안된다'고 잘라 말하는 게 주특기"라며 "'깐깐하다'는 소리를 들을때도 있지만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쪽이 일을 마찰없이 추진하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남북 협력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자문을 맡는 것이 자신의 최종 목표라고 했다. 그는 세종 내에 관련 프로젝트 팀을 만들고 현대아산ㆍ정부 관계자 등과 만나는 등 활발히 물밑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는 "부동산 자문 시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남북 경제협력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향후 포부를 밝혔다.
[정지성 기자]
[본 기사는 05월 05일(11:23) '레이더M'에 보도 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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