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는 게 편이다."
손해사정사 제도를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손해사정사 대부분이 보험사 소속이거나 위탁계약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보험사고 시 손해액과 보상금 산정에 있어 '보험사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해사정사는 사고나 재해 발생 시 손해액과 보상금을 산정하는 전문가다.
◆손해사정사 '70%' 보험사 월급 받는 종속 관계
21일 금융감독원 및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손해사정사로 등록된 인원은 7809명으로 이중 보험사 소속은 3120명으로 절반 수준을 차지했다.
또 별도 손해사정업체로 등록된 회사에 소속돼 보험사와 업무 위탁 관계에 있는 인원은 2350명으로, 전체 손해사정사의 70% 이상이 보험사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손해사정사 제도는 1977년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보험사고로 생긴 손해액을 독립적인 전문가로 하여금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사해 결정토록 함으로써 보험사와 소비자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사전에 억제하는 등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그러나 구조적으로 보험사에 소속되거나 보험사로부터 업무를 위탁받는 형식으로 손해사정사 제도가 운영되고 있어 보험사고 시 소비자보다는 보험사에 유리하게 보상액 등이 책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김정주 조사관은 "손해사정사 상당수가 보험사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고용 또는 위탁 손해사정사"라며 "소비자들이 손해사정사가 보험계약자 보다는 보험사 편이라고 생각해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사 자기손해사정 금지해야"
이처럼 손해사정사 제도가 도입 취지와 달리 의미가 퇴색되면서 손해사정사가 자신과 이해관계를 가진 자의 보험사고에 대해 손해사정을 하는 일명 '자기손해사정행위'를 금지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손해사정사가 보험사 눈치를 살피지 않고 본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자는 것이다.
김정주 조사관은 "보험업법 시행령 제99조의 단서를 삭제하고 보험업법 내 자기손해사정 금지와 관련한 규정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이와 함께 보험사가 고용 또는 위탁 손해사정사의 업무 독립성을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금융당국이 면밀히 감시하고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보험업법 제189조는 자기손해사정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동법 시행령 99조는 단서를 달아 보험사가 고용한 손해사정사를 통해 자기손해사정을 할 수 있는 통로는 열어놨다. 고용 또는 위탁 손해사정사가 보험사의 입장에서 손해사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을 보험업법이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자기손해사정을 허용한 보험업법을 정치권과 금융당국에 대한 보험사 로비의 결과물로 인식, 법개정을 통한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행위 금지는 현실상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제3 손해사정사' 선임 고지 강제해야
금감원은 2008년부터 '보험금 지급업무에 관한 모범규준'을 통해 보험사로 하여금 보험금 청구를 받은 시점에 보험계약자에게 제3의 손해사정사에게 보험금 책정 등의 업무를 위탁할 수 있음을 고지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규준의 강제력이 없어 보험사 '열에 열'은 고지를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소비자들에게 보험사 소속이나 위탁 손해사정사가 아닌 제3의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험사로 하여금 고지토록 강제해, 보험사의 자기손해사정행위 허용에 따른 폐
보험사가 보험금 결정권과 지급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소비자가 선임한 제3의 손해사정사가 작성한 손해사정서의 실질적인 효력을 보험사들이 수용토록 강제화하는 방안도 함께 염두에 둬야할 것으로 보인다.
[매경닷컴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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