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K생명보험사 종신보험에 가입한 김상원(가명·33) 씨는 혼란스럽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가입했을 당시 보험 상품의 약관에 '자살 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으면 이를 지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K생명 고객센터에 확인했으나, 보험금 지급이 불가하다는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약관상 '재해사망특약에 가입했을 경우 면책기간(2년) 후 자살시 재해사망보험금(일명 자살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으면 이를 지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보험사들이 이러한 금감원의 결론은 사실상 자살을 방조하는 것이라며 약관을 바로 잡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과 보험사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중간에 낀 애꿎은 소비자들의 혼란만 가중되는 모양새다.
30일 금감원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대다수 보험사들이 2010년 4월 이전 재해사망특약 약관상에 '자살 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했지만 '약관상의 실수'라며 자살은 재해사망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자살의 경우는 일반사망으로 본다는 것. 현재 이 약관은 '재해 이외의 원인으로 사망한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수정, 보험사들은 면책기간(2년) 경과 후 자살 때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
앞서 24일 금감원은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재해사망특약 가입 2년 후 자살한 428건에 대해 560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ING생명에 대해 기관주의 조치와 함께 과징금 4900만원 부과를 결정했다. 임직원 4명에 대해 주의 등 징계를 내리는 한편, ING생명에 자살보험금 지급계획을 마련해 보고하도록 명령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8~9월 ING생명에 대한 종합검사를 벌여 이런 사실을 적발했다.
문제는 보험사들이 순순히 자살보험금 지급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속내는 재해사망보험금이 일반사망보험금 대비 2배 이상 많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자살을 재해사망으로 보면 자살을 방조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면 대다수 보험 가입자들에게 비용이 전가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단체 등은 보험사가 과거 약관대로 자살 건에 대해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시 규모는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자살을 재해사망으로 보면 자살을 방조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고 자살로 인한 보험금 지급이 늘게 되면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금감원과 보험사간의 씨름에 소비자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 보험 가입자는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금감원이 맞는 것인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사가 맞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며 "소비자들은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한편 자살보험금 관련 문의 시 금감원의 대응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금감원은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론은 내렸지만 관련 문의에는 지급여부에 대해 확답할 수 없다고 안내하고 있어 모호한 태도에 또 한 번 소비자들이 혼란을 호소하고 있다.
[매경닷컴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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