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회장과 은행장 두 수장의 동반 퇴출이라는 사상 초유의 KB사태가 막을 내렸다.
관치(官治)·낙하산 인사로 분류되는 임영록 KB금융·이건호 국민은행장 두 수장은 결국 그 관치금융에 의해 종말을 고하는 신세가 됐다.
KB금융 이사회는 17일 밤 늦게까지 임 회장의 자진사퇴를 설득 했으나 실패하자 임 회장의 해임안을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사외이사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서둘러 해임안을 처리할 필요가 있느냐. 이런 식으로 해임하는 것은 또 다시 관치금융에 굴복하는 것"이라며 임 회장의 해임안 의결에 끝까지 반대, 결국 투표를 통해 7대 2로 해임안을 가결시켰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사회가 임 회장의 억울함을 충분히 이해하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서 경영공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날 저녁 일부 이사들이 임 회장의 자택을 방문해 자진사퇴를 권유했으나 임 회장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 이사회의 해임결정에 따라 임 회장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사회의 정식 의결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바로 대표이사직을 상실, 오는 19일 차기 회장 인선작업이 시작된다.
'이사의 직'해임은 주주총회 결의 사항이나 '대표이사' 해임은 이사회 과반 수의 의결로 가능하다.
이번 이사회의 빠른 의결은 LIG손해보험 인수 불승인 가능성 등 금융당국의 전방위'압박카드'가 효과를 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법률적으로 최고 경영자에 대한 징계 수위가 LIG손보 인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주회장·은행장이 잇따라 중징계를 받은 금융사에 LIG손보를 매각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함께 새 경영실태평가지표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이 경우 사실상 LIG손보의 인수는 물 건너 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주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사회 각 개인의 내적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LIG손보 인수가 지연돼 지연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거나 최악의 경우 인수가 무산되면 KB금융 주가에 직격탄이 예상됐다.
여기에다 감독당국은 KB금융 전 계열사에 대한 금감원 감독관 파견, KB국민카드 정보유출 사건에 대한 고강도 검사, 검찰에 임 회장 고발 등으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은행권 관계자는 "국민은행 같은 대형 금융사가 감독당국에 맞서면 정상적인 경영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경영 정상화를 위해 이사진들이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임 회장이 이사회의 해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소송을 제기할 여지는 남아 있다.
KB금융 이사회는 9일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장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 내·외부의 후보군 중에서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후보군에는 KB금융 경영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KB금융 전 계열사 상무급 이상 임원과 주주, 사외이사, 헤드헌팅업체 등이 추천한 외부 인사가 포함된다.
KB사태와 같은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금융권 인사에서 관치가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차기 KB금융회장과 국민은행장 후보군에서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벌써부터 차기 회장 하마평이 솔솔 나오고 있다. 하지만 관치금융의 뜨거운(?) 맛을 제대로 본 터라 아직 유력 후보군 가운데 관치와 관련된 인사가 거론되지 않고 있다.
차기 회장 후보군으로는 현 KB금융 회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윤웅원 부사장(54)과 국민은행장 직무대행인 박지우 부행장(57).
이들은 회장 후보로서'명(明)과 암(暗)'을 동시에 갖고 있다.
현 비상경영체제를 이끌고 있어 현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으나 그들도 이번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KB 출신으로는 김옥찬 전 부행장(58)과 윤종규 전 지주 부사장(59), 김기홍 전 부행장(57) 등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과 연이 닿아 있는 낙하산 인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도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 전 회장이) 금융당국의 징계 무효 소송을 낸 지 하루만에 이사회 해임이 의결되는 것 자체가 관치금융의 숨겨진 모습일 것"이라며 "KB금융 회장은 '정부 몫'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또 관피아나 정권 실세와 가까운 금융인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경우 국민은행 노조 등 KB금융 안팎에서 거센 반발 기류가 형성, 경영 정상화의 당초 취지는 무색해 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중론이다.
일각에서는 현 KB금융 계열사 포트폴리오를 감안할 때 금융지주회장과 국민은행장을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그룹은 유독 은행 비중이 높은 터라 은행장과의 힘 겨루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회장과 행장의 겸직도 고려해 볼 만 하다"고 말했다
[매경닷컴 류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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