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지난달 17~31일 ‘주전산기 사업 재추진’ 입찰 결과 국민은행의 전산기 운영업체인 한국IBM만이 현행 기종인 메인프레임에 참여했다. 유닉스 기종 관련 업체들은 불참했다. 국민은행은 4일부터 재입찰공고에 나설 예정이지만 유닉스업체 참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난 5월 유닉스 기종만으로 경쟁입찰에 나섰을 때도 SK C&C만 단독 참여해 유찰된 바 있다. 당시에도 두 차례 유찰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KB 사태로 금융권 혼란까지 초래한 사업에 IT업체들이 참여를 꺼리고 있다”며 “메인프레임에 비해 유닉스 기종으로 전환할 경우 예산이 더 많이 들어갈 수 있고 벤치마크테스트(BMT)에서도 전환 위험이 부각됐다”고 전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 BMT 시행 조건 아래 유닉스로 전산기 전환을 결의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건호 전 행장 등 경영진은 유닉스 기종으로 전환할 경우 오류 문제를 제기하면서 특별감사보고서까지 작성했으나 국민은행 사외이사들 반발에 직면해 이사회 접수조차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은행 경영진 의견을 묵살하고 다수결로 봉쇄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지주 집행임원이 국민은행에 공문을 발송해 ‘감사보고서 접수 금지’를 지시해 은행과 지주회사의 갈등구조는 증폭됐다. 결과적으로 금융당국 제재를 거쳐 KB 두 수장이 물러났고 주전산기 문제마저 원점으로 되돌아갔지만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구성하는 지주와 은행 사외이사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경재 KB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지난달 29일 윤종규 신임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에 대한 이사회 결의 직후에 “(집단사퇴 등 책임론에 대해) 거취는 무슨 거취? 아무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KB금융지주 한 사외이사는 “엄밀히 말해 (주전산기 문제는) 국민은행장과 이사회 간 문제 아니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KB금융지주 이사회는 지난 5월과 8월 “지주에서라도 주전산기 문제를 제대로 검토해달라”는 은행 경영진의 두 차례 요청을 묵살했다. 당시 은행 경영진은 공문을 보내고 지주 이사회 감사위원장에게 간청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사실상 KB금융지주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외이사들이 KB 사태를 방치한 셈이다. KB금융그룹에서 국민은행 비중이 80%를 넘지만, KB금융지주 이사회에서 은행 주전산기 문제를 계열사 내부 문제로 평가절하한 것이다.
김중웅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도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경영 정상화 뒤 도의적 책임’을 밝혔지만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는 2008년 말 ‘KT 사태’ 및 2010년 말 ‘신한사태’와 대조를 이룬다. 당시 두 회사 사외이사들은 경영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일괄사퇴했다. 특히 남중수 전 KT 사장이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당시 신임 이석채 회장을 뽑고 나서 자진
금융권 관계자는 “윤종규 회장 내정자를 중심으로 KB 조직 안정과 경영 정상화를 하려면 ‘KB 사태’로 책임 있는 인사들이 명예롭게 자진사퇴해서 윤 내정자에게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계만 기자 / 김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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