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시스템 교체 갈등을 중재하지 못한 것을 두고 사퇴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금융당국과 버티는 사외이사들의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윤종규 KB금융 회장 내정자의 첫 과제가 사외이사 거취정리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사안은 LIG손해보험 인수 승인 건과도 맞물려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6일'한국금융의 과제와 미래'세미나 기조연설을 통해 "KB금융 사태 등으로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마저 확산되고 있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 사태 책임의 상당 부분은 사외이사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먼저 경영진 독단을 견제할 수 있는 견고한 지배구조를 확보해야 한다"며 "최고경영자(CEO) 리스크의 관리와 함께 사외이사와 이사회 등이 도입 취지대로 작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국정감사에서 "KB금융 사태에서 느낀 것은 사외이사 제도에 전반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향후 전개될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은 사외이사 제도 개편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KB금융의 지배구조 문제 해결없이는 LIG손보 인수 승인도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즉 이경재 이사회 의장 등 최근 KB사태와 관련 있는 사외이사들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KB사외이사들은 차기 회장 선임 등을 이유로 거취 표명을 밝히지 않았다. 때문에 차기 회장 후보를 최종 의결한 뒤 입장표명이 있을 것이란 게 금융권의 관측이었다.
하지만 최근 사외이사들은 '사퇴 의사가 없다'며 금융당국의 사퇴 압박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이경재 KB금융 이사회 의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향후 거취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거취는 무슨 거취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사퇴할) 아무런 이유도, 계획도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사외이사들 또한 "민간 금융사의 내부문제에 왜 금융당국이 일일이 간섭 하느냐"며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러는 사이 KB금융의 재정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당장 지난 28일부터 LIG손보 인수와 관련, 계약금 대비 연 6% 수준(하루 1억1000만원)의 계약실행 지연 이자를 물고 있다.금융당국이 KB금융 지배구조 개선 등을 이유로 LIG손보 인수승인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
만약 올 연말까지 인수절차를 매듭짓지 못하면 약정상 KB금융의 LIG손보 인수 건은 무산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설사 계약 해지까지 가는 한이 있어도 지배구조 개선 문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개선을 LIG손보 인수 승인 건과 결부시키면서 윤종규 KB금융회장 내정자는 당국 입장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윤 회장 내정자는 최근 실무진에 태스크포스(TF) 구성과 객관적인 지배구조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해 외부 컨설팅 회사를 선정하는 작업도 서두를 것을 지시한 바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9명의 KB금융 사외이사 중 6명의 임기가 내년 3월에 끝나는 만큼 지배구조 개선 계획이 마련되면 사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KB금융의 TF 개선방안이 아무리 빨라도 연내에는 결과물을 내기 어려워 그 전에 윤회장이 이사회와 만나 향후 거취와 관련한 명확한 입장
은행권 관계자는 "윤 회장 내정자가 사외이사진 개편을 통해 경영 주도권을 확보치 않고는 새 출발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이번 문제가 (윤 내정자의) 앞날을 가늠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경닷컴 류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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