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2회에 걸쳐 설립된 지 10년이 된 개성공업단지(이하 개성공단)의 태동과 위치적 특성에 대해 알아봤다. 이번 연재에는 개성공단의 마무리를 위해 난 10여년간 개성공단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황해남도 개성시 봉동 일원에 위치한 3.3㎢(약 100만평) 개성공단에 대한 토지임차료 협상은 2003년 11월에 착수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북측이 제시한 금액은 차이가 컸다. 협상은 2004년 4월까지 약 5개월간 지연됐다.
양측이 합의점을 찾은 시기는 2004년 4월 13일이다. 이날 임차토지와 지장물 및 기타물건에 대한 보상금으로 미화 1600만 달러를 지불키로 하되, 이중 400만 달러는 개성공단 출입국시설인 북측의 출입국사무소(CIQ) 건축에 사용키로 했다.
개성공단의 투자환경을 위해 2003년 8월 20일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청산결제, 분쟁해결에 관한 4대 남북경협합의서가 남북 간에 발효됐다. 통행·통신·통관·검역에 관한 합의 및 국회동의를 받아 북측의 초청장 없이 통행증으로 간소화 된 것.
아울러 개성공단의 기반시설설치에 필요한 비용 1573억원을 남북협력기금에서 무상으로 지원받아 3.3㎡당 분양가를 14만9000원으로 하는 등 다소 양호한 투자여건을 마련했다. 공단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개성공단 투자기업이 북측에 수용, 송금제한, 당국 간 합의파기 등 돌발적인 조치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시 손실을 보전해주는 제도도 마련했다.
북측 근로자들이 만든 주방용품, 2004년에 첫 판매
개성공단 투자환경의 사전검증과 조기 활성화를 위해 1단계 준공 이전인 2004년 6월 30일 시범단지 9만2562㎡를 준공해 2005년 말까지 봉재·신발·전자부품 등 15개 기업이 입주해 북측 근로자 약 3000명이 근무하게 됐다.
2004년 12월 15일 입주기업 최초로 리빙아트가 북측 근로자들이 만든 주방용품을 남쪽에 판매함으로써 개성공단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또한 2005년 5월 26일에는 의류제조업체 (주)신원이 남측 모델들의 패션쇼를 개성공단 현지에서 여는 등 시장경제의 틀이 서서히 갖춰 나갔다.
↑ [2013년 9월 촬영된 북한 개성시 봉동리 개성공단 모습. 사진출처 매경DB] |
이어서 2006년 2차 분양을 추진했으나 북핵사태, 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에 따른 대북관계 악화로 분양은 착수하지 못하고 해를 넘겨야 했다. 2007년 들어 6자회담이 열리면서 분위기가 나아지자 잔여물량 175만4000㎡에 대한 2차 분양을 준비해 나갔다.
2007년 3월 7일부터 5월 29일까지 서울을 비롯한 6대 광역시와 인천남동공단, 안산시화공단 등에서 12회에 걸친 설명회를 개최하고, 특히 외국기업 위해 주한 EU상공회의소와 협의해 별도의 투자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다각적인 홍보활동을 펼쳤다.
2007년 6월 25일부터 시작된 2차 분양은 공급물량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2.3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해 182개 업체가 입주기업으로 선정됐고, 추가로 112개 기업의 입주가 완료되어 4만여 명의 북측근로자가 근무하게 됐다. 더욱 활기가 붙어서 아파트형 공장 입주기업을 포함해 400여 개 입주기업에 북측근로자 수는 약 10만 명에 다 달았다.
개성공단 편의시설 부족으로 인한 입주기업 해소를 위해 정부요청으로 호텔사업 등 지원시설사업을 추진하고, 지원시설사업은 사업위험 완화와 전문성을 고려해 개발사업자(토지공사·현대아산)와 민간사업자가 공동으로 출자해 국내에 한누리(주)를 설립했다.
국내에 설립된 한누리(주)가 개성현지법인인 한누리호텔(주)과 한누리에너지(주)를 설립하고 호텔사업과 에너지사업(주유소·충전소)을 진행했다.
북측과 협의해 개성공단 관련 각종 법, 규정, 준칙 등이 제정이 되어 법적·제도적 기반을 구축하였고 사업시행자, 개성공단지원사업단,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등 사업추진체계가 정비됨에 따라 향후 개성공단 2단계, 3단계 등 남북경협이 확대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 [개성공단이 2013년 4월 3일 북한의 일방적인 통행 제한 조치로 가동 중단된지 160여 일 만에 재가동된 가운데 9월 17일 오전 북한 개성시 봉동리 개성공단 SK어패럴에서 근로자들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출처 매경DB] |
2008년 새 정부 출범 후에는 북핵문제의 심화, 미사일 발사, 현대아산 직원의 억류 등으로 남북관계가 심하게 경색되면서 북측은 돌연 2009년 4월 21일 개성접촉을 통해 북측 노동자 임금인상과 토지사용료 유예기간을 10년에서 6년으로 재조정, 토지 임차료 재협의 및 북측근로자 숙소문제 해결 등을 요구해 왔다.
이 후 교착상태에 빠진 개성공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인 협의를 가진 끝에 현대아산 직원의 억류가 풀리고 2009년 9월 1일 개성공단 통행이 정상화되는 등 다시 대화의 물꼬가 터이기 시작했다.
[자문 JNK 개발원 정인택 원장 / 정리 이미연 기자]
[참고] 정인택 원장은 現 JNK 개발원 원장으로 사단법인 도시경영 포럼 부회장과 前 서울시 도시정비과, 한국토지공사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도시개발, 마케팅, 인력개발 등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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