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주총회 시즌 때 주요 화두로 부상할 테마들이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 사이에서 이 이슈들이 국내 상장사들의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주총에는 기관들이 거수기 역할에서 탈피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설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위원회 관계자는 18일 “현대차의 한국전력 삼성동 용지 고가 매입을 포함해 지난해 기업가치 훼손 논란을 불러온 기업 의사결정이 여럿 있었다”면서 “이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지를 두고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한전 용지 매입건은 현대차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입찰가를 써내면서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한전 용지 낙찰 전 20만원 수준이던 현대차 주가는 현재 17만원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삼성SDS 상장 과정에서 자산 헐값 매각 논란이 인 삼성전기 주총도 주목받고 있다. 당시 삼성전기는 보유 중이던 삼성SDS 지분(7.88%) 전량을 구주 공모매출로 처분했다. 삼성전기의 삼성SDS 주식 매각 가격은 공모가인 주당 19만원이었는데, 상장 첫날 시초가는 2배인 38만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오너 일가 등 나머지 삼성 측 주주들은 삼성전기와 달리 삼성SDS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며 상장 이후 상당 규모의 평가이익을 얻은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상장 후 삼성SDS 지분 가치가 급등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삼성전기 지분을 정리하는 게 삼성그룹 입장에선 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이었을 것”이라면서 “결과적으로 삼성전기 주주들이 이번 자산 매각에 따른 주주가치 손해를 감수하게 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한항공 주총에선 사외이사의 독립성 문제가 쟁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황’ 사건에서 촉발된 오너 일가의 무소불위 행태 이면에 사외이사들의 독립성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어서다. 대한항공 사외이사 7명 중 5명이 대한항공과 각종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법인 광장의 안용석 변호사는 사외이사 선임 전인 2012년 7월 대한항공이 몽골편 운항을 독점하고 성수기 항공운임을 비싸게 받았다는 내용으로 공정위에 회부됐을 때 대한항공 측 대리인으로 일했다. 현정택 씨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이사장인 인하대 교수다. 박오수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2000년부터 16년째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
글로벌 평균 대비 지나치게 낮은 한국 상장사들의 배당 규모도 주요 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세계 각국 증시의 5년 평균 배당성향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배당성향은 17.6%로 대만(67.2%) 프랑스(63.1%) 일본(49.3%) 미국(33.7%)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
이처럼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한국 기업 특유의 문제들이 쟁점화하면서 국내 상장사들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지침을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오너 중심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 움직임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주총부터 투자 중인 700여 개 종목의 주총 안건 전체에 대한 분석 작업을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할 예정이어서 올해 주총에서 안건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의결권 지침에는 기업가치 및 주주 권익을 침해한 사내이사의 선임에 반대하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재직임기가 10년을 초과한 경우 사외이사 선임을 반대하도록 명시돼
국민연금은 자본시장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하고,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통해 불합리한 배당을 실시하는 기업을 견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움직임에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들이 배당금 증액 계획을 발표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오수현 기자 /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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