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희망홀씨, 햇살론과 같은 정부 주도로 만든 대출 상품이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 10%~20% 구간 신용대출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은행이 우량 고객에 대한 대출 경쟁에 몰두하는 가운데 저축은행이 20%대 고금리를 획일적으로 운용하면서 ‘금리 단층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의 원칙 없는 정책에 금융사 보신주의까지 더해지면서 중금리 대출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의 연 10% 이상 중금리 대출 비중이 최근 급격히 줄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시중은행이 취급한 10%대 이상 대출 비중은 0.4%에 불과하다. 이 중 10~12% 금리 대출 비중은 0.2%로 2012년 말 0.7%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저금리와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은행들이 우량 고객을 타깃으로 경쟁적으로 대출 자산을 늘렸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금융당국 지침에 따라 2013년 ‘서브프라임 신용평가모형’을 도입하고 중금리 대출상품을 출시했지만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최근 하나은행이 OK아프로캐피탈과 제휴를 맺고 10%대 중금리 대출 상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지만 캐피털사가 신용평가와 승인을 통해 지급 보증하기 때문에 은행은 전혀 위험을 지지 않는 구조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 스스로 신용평가모형을 정교화해 중신용자를 타깃으로 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도 모자를 판인데 너무 손쉬운 영업만 하려 한다”고 말했다.
중금리 대출 실종으로 인해 특히 4~6등급 중신용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은행에서 거절당하면 저축은행·대부업체에서 연 30%에 육박하는 고금리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기 악화로 부실이 커지면 바로 저신용자로 전락할 위험이 가장 큰 계층이다. 하지만 정책금융 상품을 제외하고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10%대 신용대출상품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금감원이 매년 은행과 저축은행을 상대로 중금리 대출상품 개발을 촉구하고 있지만 시장은 오히려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 저축은행의 가계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여전히 20%대 중반대로 높다. 특히 당초 중금리 대출을 늘릴 것으로 기대됐던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들이 오히려 연 30%대 육박하는 고금리 대출을 판매하고 있다.
금융사들이 중신용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우량 신용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영업하는 데 반해 ‘중간 등급’ 고객들을 ‘잠재적인 저신용군’으로 분류해 상대적으로 신용평가를 소홀히 한다”고 말했다.
일본 J트러스트 계열 친애저축은행, 러시앤캐시 계열 OK저축은행, 웰컴론 계열 웰컴저축은행 모두 전체 가계신용대출의 90% 이상이 연 25~30% 고금리 대출이다.
금융당국이 업권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서민금융을 주문하면서 시장이 오히려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당국 눈치를 보면서 중금리 대출을 늘렸다가 평균 금리가 과도하게 올라가면 또 당국에 찍힐 게 분명하다”며 “중금리 대출은 은행에는 ‘계륵’과 같은 상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연체금리가 연 15%로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자유롭게 금리를 운용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은행이 중금리 대출 시장까지 잠식하면 저축은행, 상호금융과 같은 서민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산건전성 분류 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제2금융권이 담보 위주 대출을 시행하고 신용대출을 급격히 줄였다”며 “중금리 대출 활성화는 은행보다 상호금융, 저축은행과 같은 제2금융권 예금기관을 중심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배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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