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손해보험은 최근 한정수 전 감사원 공직감찰본부장을 상근감사위원으로 영입하기로 했다. 감사원 1급(고위공무원 가급) 출신인 한 전 본부장은 정년을 3년가량 앞둔 지난 1월 말 스스로 물러난 데 이어 지난 20일 실시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3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에서 '취업가능'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전임 농협손보 상근감사위원이 감사원 국장급(고위공무원 나급)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감사원 출신의 몸값이 떨어진 셈이다.
공직자 취업제한 규정이 강화되고 이른바 '정(政)피아'까지 민간회사 취업시장에 쏟아지면서 관(官)피아의 '몸값'이 예년보다 뚝 떨어지고 있다. 특히 공직자들이 이달 31일부터 공직자 취업제한 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연장되면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급하게 취업시장에 뛰어들면서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29일 금융권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3월 퇴직공직자 취업심사 인원은 49명으로 심사결과 전면공개가 시작된 지난해 7월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몰렸다. 월별 취업심사 인원은 지난해 하반기 월평균 20.2명에서 올해 1월 17명, 2월 34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NH농협손해보험 관계자는 "2012년 3월 출범 당시만 해도 자산총액 1조원대로 종합손보사 업계 순위 꼴찌였지만 지금은 자산 6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등 중위권을 넘보고 있는 만큼 무게감 있는 인물을 영입할 계획"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관가는 이를 두고 관료 몸값 '디플레이션'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달 권인원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주택금융공사 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긴 것을 두고도 뒷말이 많다. 2008년 당시 같은 직급인 임주재 전 금감원 부원장보가 주택금융공사 사장으로 갔던 전력 때문이다. 금감원 내에서는 최근 박임출 전 금감원 자본시장조사2국장이 예탁결제원 신임 상무로 자리를 옮긴 것은 그나마 행운이라고 보고 있다.
이처럼 관피아들의 몸값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31일부터 강화된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규정이 실시되면서 예년보다 많은 퇴직공무원들이 시장에 쏟아진 데 따른 것이다. 퇴직공직자가 취업심사를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기간이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3월 안으로 사표수리를 추진해온 관료들이 많았다.
취업기관과 퇴직 직전 5년간 근무부서의 관련성을 따지는 취업심사 기준에 따라 정부 부처 내에서 소위 '잘나가는' 관료들이 취업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관피아들의 몸값이 떨어진 원인으로 분석된다. 실질적으로 채용이 가능한 관료들의 수준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정피아들도 관피아들의 몸값을 낮추는 요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청와대나 정치권 출신 인사들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면서 관료를 영입하고 싶은 자리가 있어도 일단 '키프(keep)'하게 된다"며 "관피아들의 몸값은 점점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준형 기자 /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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