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계열사들이 지난해 자사주를 유독 많이 사들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가 주된 목적이라고 밝혀왔지만, 삼성물산처럼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하려는 속내가 아니겠냐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그룹 계열사의 자사주 취득금액은 3조5840억원으로 전체 상장사 매입액의 67%에 달한다. 특히 삼성전자(2조4459억원) 삼성화재(4155억원) 삼성중공업(3152억원) 삼성생명(2103억원) 순으로 매입규모가 크다. 매번 자사주 매입이 ‘주가 안정을 위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런데 삼성물산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까지 자사주를 처분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자, 그 동안의 자사주 매집도 지배구조 개편을 겨냥한 포석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SK그룹이 2007년 지주사 전환을 앞두고 2006년에 자사주를 많이 사들였듯이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임박할수록 자사주 매입이 활발해진다”며 “가령 삼성화재가 자사주 매입에 소극적으로 변한 이유도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에 필요한 물량을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화재의 경우 그 동안 높은 주주환원율이 동종업체 대비 주가가 프리미엄을 받는 배경으로 꼽혀왔다. 작년에도 12월까지는 자사주 4155억원을 사들여 지분율을 12.43%까지 끌어올렸다. 이로써 자사주 포함 삼성그룹이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이 30%를 넘어섰고, 삼성화재는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가 되는 데 필요한 자회사 요건을 모두 충족하게 됐다. 그런데 올 들어 삼성화재는 지난 2월 실적발표회에서 향후 자사주 매입을 지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발표했고, 주가는 이튿날 곧바로 10% 넘게 추락했다. 삼성그룹의 자사주 매집이 주주가치를 최우선에 둔 조치인지 의구심이 생기는 대목이다.
작년 11월 삼성중공업의 3152억원(5.1%) 규모 자사주를 매입 역시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시각이 많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물량을 줄이려 주가를 부양하려는 의도가 보였다는 설명이다. 같은달부터 올해 1월까지 이어진 삼성전자의 2조4459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도 반드시 주주친화적 정책의 일환만은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작년 3분기 어닝 쇼크와 저조한 중간배당으로 추락한 주가를 방어하려는 목적도 분명 있었겠으나, 지주사 전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
강성부 LK파트너스 대표는 “삼성전자가 당장 지주사 전환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자사주 매입시 이 같은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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