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일부 금융권에선 최고금리가 사실상 단일금리로 작동하면서 다양한 신용등급을 가진 서민들이 소외돼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반면 선진국은 최고이자율 규제를 활용하는 대신 대출조건이나 대출자격 심사를 강화해 서민을 보호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규복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18일 "금융 선진국은 이자율을 규제하기에 앞서 먼저 대출 이용자에 대해 정밀조사한 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며 "한국도 단순히 금리를 내리기보다 서민금융 이용 고객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다양한 해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업계에선 정부의 최고이자율 규제 때문에 오히려 금리 차등화 전략을 구사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서민금융을 대표하는 국내 주요 대부업체의 대출금리는 신용등급별 차등 없이 정부가 정한 상한금리가 단일금리로 사용되고 있다. 과도한 이자 규제 때문에 금융회사들이 다양한 금리 상품을 내놓지 못하면서 신용도가 높은 서민들도 혜택을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단순히 최고이자율만 내리면 신용도가 낮은 서민이 불법 사금융에 빠질 것이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선 다양한 대책이 요구된다. 박덕배 성균관대 교수는 "최고이자율 인하로 서민의 금융 소외 현상이 심해져 고금리 사금융 이용자가 많아지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며 다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금융 선진국은 서민 금융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최고이자율 제한은 완화하는 대신 대출조건·자격심사 등을 강화하는 추세다. 최근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은 1600만건의 대출자료와 460만명의 소비자에 대한 신용분석 등을 토대로 '전체 대출비용 상한제' 등의 내용이 담긴 대출 규제안을 발표했다. 전체 대출비용 상한제란 고객이 대부업체에서 빌린 원금의 100% 이상을 이자·수수료 등 비용으로 지불하지 않도록 제한을 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객이 100만원을 빌렸을 경우 대부업체는 연체 기간이 아무리 길어져도 이자 및 수수료로 10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없는 제도다.
미국 금융소비자보호국(CFB)도 최근 페이데이론(payday loan) 등 초고금리 대출상품이 유행하면서 '부채 함정(Debt Trap)'에 빠지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내놨다. CFB 역시 최고이자율 제한 대신 대출을 엄격히 심사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 업체가 대출자의 소득, 과거 대출이력 등을 심사해 실제 상환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돈을 빌려주도록 하는 것이다.
또 대출을 연이어 받으면 일정 기간 추가 대출을 못 받게 하는 '대출 쿨링오프제(cooling-off period)'나 대부 업체가 직접 소비자를 위해 상환 스케줄을 정밀하게 짜주는 방안도 미국에서 활발히 논의 중이다.
일본에선 대부 업체 대출자에 대한 채무조정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제안도 제기됐다. 일본 소비자금융 전문가인 도모토 히로시 도쿄정보대 교수는 '금전 카운슬링' 제도를 금리 상한제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부 업체에서 상환 의지는 있으나 상환 능력이 부족한 이용자에게 상담을 통해 이자를 일정 부분 감면해주거나 상환 일정을 조율해주는 시스템이다. 그는 "상환 능력이 없는 채무자는 지자체가 상담 시스템을 통해 상환을 도와줘야 된다"며 "시스템을 만드는 비용은 수익률이 높은 일부 대형 대부 업체들 이윤에서 일정 비율을 각출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제도권 금융사를 중심으로 중금리 대출시장을 활성
[정지성 기자 / 배미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