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2012년 2월 17일자 합의서는 (두 은행 간)합병 자체가 이뤄질 것을 전제하면서도 가능한 한 5년 동안 외환은행을 독립법인으로 존속하도록 하는 취지이지, 합병을 위한 논의나 준비작업도 전면 금지하는 취지로까지 보이지 않는다"며 "현시점부터 합병에 대한 논의와 준비작업이 진행되더라도 합병 자체가 실질적으로 완성되는 시점은 합의서에서 정한 5년이 모두 지난 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2월 결정 후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1.5%로 떨어지는 등 금융 환경이 변한 것도 종전 합의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이유로 봤다.
재판부는 "기존 결정은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사정이 바뀌었다고 보기 어려워 합의서 구속력을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라며 "그런데 해당 결정 후 은행 순이자마진이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되는 등 국내외 경제 상황과 은행산업 전반적인 업황이 가처분결정 당시에 비해 나빠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까운 장래에 경제주체들이 예측하지 못한 급격한 금융 환경 변화가 발생하는데도 합의서 구속력이 그대로 인정된다면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부당한 결과에 이르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은 합병 과정에서 외환은행 근로자 지위, 근무조건, 복리후생 등 외환은행 노조 측 중요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상당한 배려를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긴급히 가처분결정을 하지 않으면 노조가 회복하기 어려운 현저한 손해를 입거나 급박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가처분 효력은 상반기까지로 제한돼 외환은행 노조가 다음달 재차 가처분 신청을 낼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법원이 하나금융 경영진 손을 들어주면서 외환 노조는 '조기 합병을 위한 대화 거부' 명분을 잃게 됐다. 가처분신청을 제기할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금융위원회도 하나금융 경영진에 유리한 의견을 내놓았다. 금융위는 "하나·외환은행 조기 통합은 노사 양측 간 합의를 거쳐 추진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도 "예비인가 신청이 있으면 접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또 "인가 절차 진행 과정에서 노사 간 합의 과정 외에 법원 결정 취지, 외환은행 경영 상황 등을 종합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벼랑 끝에 몰린 외환 노조 관계자는 "법원 결정이 2·17 합의서 효력을 부정한 건 아니다"며 "경영진이 법원 결정을 이유로 일방적인 합병 강행만 하지 않는다면 대화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환 노사 간 협상 결론이 다음달 6일 오전까지 나오지 않으면 지난 4월 말 하나금융 경영진이 노조에 파격 제시한 △통합 은행명 '외환·KEB' 사용 △통합 후 구조조정 없음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인사 분리 △조기 합병 효과 공유 등 제안마저 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외환 노조는 남은 열흘간 경영진과 협상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이유섭 기자 / 이현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