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0대 자산가 김모씨는 얼마전 고심끝에 보유하고 있는 삼성동 빌딩을 매물로 내놓았다. 올들어 건강이 안 좋아지다보니 덜컥 자녀들에게 물려줄 재산을 미리 정리해놓아야 겠다는 생각에서다. 자리가 자리인만큼 임대수익도 괜찮은 편이지만 건물 째로 넘겨줬다가는 자칫 가족끼리 건물 지분을 놓고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예 현금화해 증여하기로 했다. 70억원이라는 만만찮은 가격에 이 빌딩을 새로 사들인 주인공은 30대 이모씨였다. ‘노후자금 마련에 강남 빌딩만큼 좋은 물건은 없다’는 말에 담보대출에다 부모님 돈까지 끌어모아 과감한 투자에 나선 것이다.
중소형빌딩 거래가 가장 활발한 서울 강남 빌딩시장의 ‘세대교체’가 활발하다. 증여문제로 골치아파하는 60대 자산가들이 내놓은 매물을 좋은 투자거리에 목마른 3040세대가 대거 사들이면서 이 지역 빌딩주인들의 나이가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27일 알코리아에셋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에서 500억원 미만 중소형빌딩을 팔아치운 개인 매도자 중 65세 이상 노인층 비중은 2013년 상반기 50%, 지난해 58.1%를 거쳐 올해 61.6%까지 치솟았다. 반면 같은기간 이를 사들인 개인 구입자 가운데 30·4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올 상반기 기준 35.5%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기간(26%)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30대 비중은 이 기간 6%에서 14%로 배 이상 뛰었다. 50대가 42%에서 37.4%, 60대는 24%에서 16.8%로 줄어든 것과 비교된다. 40대(21.5%)는 전통적인 ‘빌딩 큰 손’인 60대도 뛰어넘었다.
60대가 빌딩을 팔아치우고 있는 것은 상속보다 증여를 선호하는 요즘 자산가들의 트렌드가 반영된 결과다. 배정식 하나은행 신탁팀장은 “죽음 이후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되면서 현재 가지고 있는 부동산 자산을 빨리 현금화해 일부는 노후자금으로 쓰고 남은 것은 자녀들에게 넘겨주려는 고객들이 많다”며 “특히 증여한지 10년이 지나면 나중에 상속가액에서 증여금액 만큼을 빼주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일찍 증여하면 그만큼 절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빌딩째로 증여했을 때 혹시 있을지 모를 가족간 분쟁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하다. 지은용 알파트너스 대표는 “대부분 상가나 오피스용으로 임대하는 중소형빌딩의 경우 건물주 사후에 상속받은 자녀들끼리 누가 더 지분을 가져가냐를 놓고 소송을 벌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사실상 임대관리도 제대로 안 돼 수익을 내기 힘든 만큼 차라리 미리 팔아서 가족간 돈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빌딩시장에서 빠져나가는 60대와 달리 30·40대는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수익형 부동산 매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황종선 알코리아에셋 대표는 “작년부터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서 30·40대 고소득층이 쏠쏠한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강남 빌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서울 강남구 상가 임대수익률은 4.1%에 달한다. 2%도 안되는 정기예금이나 채권금리보다 배 이상 높다. 메이트플러스가 조사한 강남구 오피스건물의 3.3㎡당 환산임대료는 2분기 기준 11만2185원으로 최근 몇년째 오름세다. 주식보다 리스크는 적으면서도 신사동이나 삼성동같은 인기지역에 있으면 따박따박 월세를 받는데 큰 문제도 없는 만큼 젊은 자산가들의 새로운 투자대상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지은용 대표는 “적게는 50%, 많게는 구입액의 65%를 대출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부모와 공동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부담을 최소화하는
고준석 신한은행 동부이촌동 지점장은 “60대는 자산정리, 30·40대는 자산형성이 목적이라 빌딩 시장에서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며 “빌딩 매각때 내야 하는 양도세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건물지분을 증여하는 것보다 세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는 만큼 거래시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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