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원 중계본동 백사마을 일대 |
1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최근 서울시에 “현재 상황에서는 사업성이 낮아 재개발을 추진할 수 없다”며 “사업 대안을 제시하거나 시행자 지정 취소 또는 변경 등의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2009년 이후 사업성 문제로 사업이 계속 표류하자 LH가 서울시를 향해 사업 포기 의사를 전달한 셈이다.
백사마을은 지난 1967년 도심 개발로 강제 철거된 청계천 등 판자촌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됐다. 19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였다가 1990년대 말부터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009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됐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릴 정도로 낙후됐지만 불암산·수락산 자락에 위치해 경관이 수려한데다 1970년대 서민들의 삶 흔적이 남아있는,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아기자기한 주택 등을 최대한 살려 잘 개발하면 한국판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마을로 변신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2011년 즈음 백사마을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백사마을의 노후 주택 밀집 지역을 보존하는 ‘주거지 보전사업’을 추진하던 와중에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정비사업 기조가 전면철거에서 보존으로 급물살을 탔다. 이듬해인 2012년 5월 전체 재개발 지구(18만8900㎡)의 서남쪽 22.6%(4만2773㎡)을 주거지보전구역으로 지정하고 기존 저층 주거지를 신축 또는 리모델링해 임대주택 600여가구로 활용하고 반대편 북동쪽 지역(9만6587㎡)에 7~20층 아파트 1720가구를 짓는 새로운 개발안이 발표됐다.
계획대로라면 정비계획변경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만큼 사업에 착수해 내년께 완공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보존할 가치가 없는 곳을 서울시가 무리하게 보존하려는 바람에 사업성 부족으로 재개발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주민들과 LH 측이 현재 계획으로도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서울시 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재개발 사업이 한발짝도 못나가게 된 것이다.
LH가 공개한 ‘중계본동 주택개발지구 사업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계획대로 주거지보존지구를 떼어내고 아파트를 지을 경우 추정 비례율은 50~70% 선이다. 통상 비례율이 100%를 넘어야 주민들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주민과 LH측은 주거지보전 면적을 현재 22%에서 14%로 줄이거나 용적률 상향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LH관계자는 “사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개발을 시작했다가 중단되면 주민들의 재산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는 “LH가 공사비 등 지출은 과다하게, 수입은 과소하게 산정한 측면이 있다”며 “그린벨트를 풀어 재개발을 하는 경우 대개 제1종 일반주거지로 용적률 110%에 5층 이하가 적용되는 반해 백사마을은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종상향됐고 용적률 200%에 최고 20층으로 아파트를 지을 수 있어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사업성 손실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LH가 철수할 경우 부동산신탁회사 등 새 사업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는 기관은 LH와 SH공사 등 공공기관으로 한정됐지만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부동산신탁사가 참여할 수 있다. SH공사는 사업성 부족 등을 이유로 참여를 포기한 바 있다.
LH의 속내도 복잡하다. 재개발 사업에서 손을 떼려면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투입한 100억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날릴 가능성도 있다. LH 관계자는 “공사비 절감 등을 통해 사업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의 협조가 없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며 출구전략을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가장 애타는 사람은 주민들이다. 백사마을은 걷잡을 수 없이 슬럼화하고 있다. 서울시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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