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설명한 내년도 자금운용 계획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대규모 양적 완화 덕분에 지난 5~6년간 한국 기업들은 '자금풍족기'를 보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디레버리징(부채감축)의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다 국내 한계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까지 겹쳐 조달금리가 평균 1%포인트 정도 상승할 것으로 염려되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레이더M이 국내 36개 주요 상장사 CF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5%인 27개사가 "내년 조달금리가 올해보다 높아져 이자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상당수 기업들은 미국 금리 인상이 국내 금리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58%인 21개사는 미국 금리 인상에 따라 국내 금리도 머지않아 따라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기업 신용등급 저하로 해당 기업들이 추가로 얹어줘야 하는 소위 가산금리도 동반 상승해 기업들이 이중고에 시달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올해 지속됐던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세는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조선 철강 건설 등 국내 제조업 간판급 기업들이 많게는 수조 원대 눈덩이 적자를 내면서 올 한 해 신용등급 하락 건수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를 반영하듯 설문조사 대상 기업 중 겨우 2곳을 제외한 34곳(94%)이 기업 신용등급 하락 추세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내년 조달금리가 올해보다 1%포인트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이 전체의 39%인 14곳에 달했다. 이 같은 조달금리 상승은 당연히 기업 자금사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36개 기업 가운데 27곳이 내년 자금사정이 악화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국내외 경기둔화 지속에 따른 실적 악화'(18개사)와 '금리 상승에 따른 조달비용 부담 증가'(15개사)를 주로 꼽았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시장금리(회사채 3년물 기준)가 향후 1년간 1%포인트 오르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는 위험기업 비중이 전체 18.8%까지 늘어나고 위험부채 비중도 23.3%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자금운용에 있어 가장 위협적인 요소를 묻는 질문에는 경기부진(22개사), 기업수익성 악화(15개사), 금리 상승(11개사) 순으로 답변이 많았다. 환율급변과 기업신용도 하락도 위협 요인 중 하나였다.
다만 금리 상승 전망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58%)을 통한 자금 조달을 가장 선호했다. 그 밖에 자금조달 방안으로는 잉여자금 활용, 자산유동화, 은행대출 등을 꼽았다. 주식시장 부진을 예상해서인지 유상증자 선호도는 낮았다.
기업들은 내년 자금 운용 시 최우선 고려 대응전략으로 비용 감축(33%), 빚 상환(22%), 현금 비축(19%) 등을 꼽았다. 신규투자에 여유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기업은 불과 9곳(25%)에 그쳤다.
국내 경기와 기업 실적 전망에 대해서도 비관론이 우세했다. 27개 기업에서 내년 실적이 올해와 유사하거나 올해보다 악화될 것이라고 응답한 가운데 현금흐름이 나빠질 것이라고 전망한 기업도 12곳이나 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저성장 국면 진입에 따른 경기 불황이 신규 투자를 저해하고 이로 인해 저성장이 이어지는 과거 '일본식 장기 불황' 패턴이 완연해지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 설문 참여기업 (가나다순)
강원랜드, 금호아시아나, 넥센타이어, 녹십자, 대림산업, 더존비즈온, 동아제약,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삼양홀딩스, 삼천리, 유진기업, 이
[김혜순 기자 / 전경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