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잇따라 상장을 철회했던 기업들이 연초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국내 증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장을 재추진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스피가 중국 증시 급락 여파에 심리적 지지선인 1900선을 내주는 등 시장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지만 더 이상은 상장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 효력이 발생하는 기간과 여전한 공모자금 수요가 이 같은 판단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3.8%와 0.6% 빠지며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속에서도 지난해 말 상장을 철회했던 차이나크리스탈, 아이엠텍, 안트로젠이 이달부터 다시 공모 절차를 밟고 있다. 당시 이들은 기관 대상 수요 예측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받아들고 공모절차를 중단했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당초 내세웠던 공모가를 대폭 낮추며 상장을 준비 중이다. 중국 기업 차이나크리스탈은 이날부터 이틀 동안 수요 예측을 실시한 후 21~22일 공모주 청약을 실시한다. 앞선 수요예측에서 부진했던 만큼 이번에는 공모희망가 밴드를 원래 3600~4500원에서 2900~4200원으로 낮춰 재도전한다.
전자부품기업 아이엠텍도 공모 희망가를 6500~7500원으로 지난해 제시했던 6800~8300원보다 낮은 수준으로 잡았다.
3년째 상장에 도전하는 기업공개(IPO) ‘삼수생’ 안트로젠은 공모가를 대폭 끌어내렸다. 공모 희망가는 1만7000~2만2000원으로 앞서 제시했던 희망가 밴드의 하단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최대 35% 눈높이를 낮춘 셈이다. 지난해 안트로젠의 희망 공모가는 2만3000~2만8000원이었다.
이들 기업이 공모자금 규모를 줄여서라도 상장에 속도를 내는 데 대해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시장 상황이 개선됐다기 보다는 개별 기업의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말로 예정됐던 공모자금 유입이 상장 철회로 지연되면서 설비 투자나 예정된 자금 집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아이엠텍은 올해 외형 확대를 위한 설비 투자에 공모자금을 사용하기로 했다가 상장이 늦춰지면서 이미 별도의 자금을 집행한 상황이다.
아이엠텍 IR 담당자는 “카메라모듈 사업 확장을 위해 신규 설비투자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에 따라 대전공장에 160억원의 자금을 투자한 상황”이라며 “오랜 기간 상장을 준비해 온만큼 기존 주주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큰 돈이 집행되는 상황을 감안해 상장을 재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 효력이 발생하는 기간이 제한되는 것도 상장을 서두르는 이유 중 하나다. 대개 거래소 상장예심을 통과한 후 6개월 이내에 상장을 마쳐야 한다. 게다가 이미 예심을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지난해 결산이 끝난 이후에는 연간 실적을 기준으로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이들 기업은 3분기까지 실적을 기준으로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상태다.
특히 지난해 말 11개 기업의 잇따른 IPO 철회로 상장 예심 효력 막바지인 3~4월에 IPO가 몰릴 가능성이 크
지난해 기대에 못 미치는 공모가에도 불구하고 상장을 추진한 한 기업 IR 담당자는 “상장에 있어 공모 흥행도 중요하지만 기존 주주들의 출구전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김잔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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