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6년차 국책은행 과장 최진성 씨(35·가명)는 연봉이 6000만원대에 달하지만 아직 집을 사지 않은 채 서울 양천구 소재 2억5000만원 규모 전셋집에 살고 있다. 은행돈 1억8000만원에 여윳돈 7000만원을 보태는 방식의 이른바 금융권 복지제도 수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연 금리 0.175%에 해당하는 사용료를 은행에 내지만 연 금리 3% 안팎의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것보다는 이 제도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내 시중·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이 6174억원에 달하는 고객돈·나랏돈을 들여 직원들에게 전셋집을 지원해주고 있어 과잉 복지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국책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서울 도심지에 별도 사택을 운영하면서 1인당 많게는 3억원의 전세집을 기관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임차사택 제도’를 통해서다. 이 제도는 직원이 거주할 전셋집을 은행이 직접 구해 직원에게 연 금리 0.175%가량의 수수료를 받고 지원하는 제도로 결혼 초기 젊은 직원들이 주로 이용한다.
12일 매일경제신문이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 7곳과 신한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 7곳, 금융당국인 금융감독원 등 15개 기관의 임차사택 지원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말 기준 4194명의 금융기관 직원들이 총 6174억원 규모의 임차사택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공기업과 금융감독원 등 공공기관 8곳 직원 2205명이 3582억원, 7대 시중은행 직원 1989명이 2592억원 규모 임차사택 수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감독원을 포함한 금융공기업의 1인당 평균 수혜금액은 1억6246만원으로 7대 시중은행(1억3031만원)보다 더 높았다.투자나 정책금융에 사용돼야 할 금융기관이나 은행의 여윳돈이 직원들의 과잉 복지에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일부 국책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임차사택 제도와 별도로 서울 강남역·신림역·광화문역 등에 역세권 별도 사택과 5000만원한도의 저리 전세대출 복지제도까지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실 규모 1인1실 사택을 운영하면서 관리비조차 받지 않아 온 국책은행 한 곳은 감독당국의 지적에 따라 이르면 다음달부터 사용료를 받을 예정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직원 복지에 돈을 쓰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자금 조달 여력이 높다는 업종의 특성을 활용한 별도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 논란이 있다”며 “시중은행보다 엄격하게 선별적 복지에 나서야 할 금융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특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비금융회사 가운데 주거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회사나 비금융 공기업은 주로 일정 금액 범위에서 저리의 전세·매매대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이 고른 주택을 기관이나 회사가 직접 임대해 직원에게 거주하도록 하는 임차사택 제도는 금융권 특유의 복지제도여서 눈길을 끈다. 집을 구입할 여윳돈을 마련하기 전까지 상당 기간 신용대출과 월세 부담에 시달리는 비금융 회사·공공기업 직원들의 고충은 금융권에서는 딴 세상 얘기나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소정의 사용료(연 0.175% 금리 수준)와 함께 지원금에 대해 소득세도 내기 때문에 과잉 복지라고 보기 힘들다”며 “사용기간 역시 9년을 넘기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등 꼭 필요한 직원에 한해 제한적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정석우 기자 / 김효성 기자 /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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