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조업 중단 소식이 한글로만 공시됐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뉴스를 보고서야 이 소식을 접했다.
일부 외국인 투자자들은 "선진 증시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한국 증시에서 여전히 기본적인 공시조차 영문으로 확인할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한국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국내 투자 여건은 열악하다.
단적인 예가 전체 공시 중 영문 공시 비중이다. 지난해 쏟아진 공시 약 1만5000건 중 영문 공시는 1%도 채 안 되는 104건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공시가 아니라 영문 IR 자료를 첨부한 게 대부분이었다. 홍보자료만 영문으로 작성했을 뿐 정작 현대차 파업같이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영문으로 공시하지 않았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거래소는 외국인 지분율이 높고 외국인 거래대금 비중이 큰 기업을 대상으로 영문 공시를 제출하도록 사실상 제도화한다. 우선적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770개 회사 중 169곳을 대상으로 골랐다.
거래소가 영문 공시를 추진하는 이유는 국내 외국인 투자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영문 투자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외국인 투자 등록자는 지난해 말 4만1602명을 기록했다. 2008년 2만5740명이던 것이 몇 년 새 두 배가량 늘어날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 보유금액 비중도 줄곧 30%대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외국인 투자자 비중이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 증시는 홍콩·싱가포르 증시와 달리 공시가 한글로 이뤄지기 때문에 국내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 간에 정보 비대칭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 증시를 선진국 증시에 편입하는 것을 검토 중인 MSCI에서도 영문 정보 부족 등 정보 흐름에 대한 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오던 터다. 영문공시는 외국기업 국내증시 상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실 영문 공시는 기업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자금을 투자받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가령 같은 전자업종이더라도 A기업이 영문 공시를 하고, B기업이 영문 공시를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A기업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모든 공시를 영문으로 하면 기업들은 전담 직원을 둬야 하는 등 비용 부담이 커진다. 거래소는 투자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만 공시할 수 있도록 영문화한 견본을 거래소 홈페이지에서 제공한다. 기업들이 견본에 있는 숫자만 바꿔 넣으면 충분히 공시할 수 있도록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거래소는 영문 공시를 잘하는 상장사에 불성실공시법인 벌점 감경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로 했다.
영문 공시를 잘하면 국문 공시에서 다소 실수하더라도 봐줄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기업이 억울하게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위기에 몰릴 수 있는데, 영문 공시만 잘해도 영문 공시 우수 법인으로 선정돼 이를 피할 수 있도록 특권을 주기로 한 것이다. 국문 공시 우수법인으로 지정되는 것은 경쟁률이 워낙 높기 때문에 쉽지 않겠지만 현재 영문 공시를 하는 기업이 별로 없어 영문 공시 우수법인으로 지정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예를 들어 지난해 LG화학은 하마터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될 뻔했다. 2011년 6월 4910억원 규모 폴리실리콘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공시했는데 태양광 업황이 급속도로 나빠짐에 따라 이를 번복했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서는 억울하겠지만 공시 번복이기 때문에 불성실공시법인이 될 수밖에 없다. 불성실공시법인이 되면 투자자에게 신뢰를 잃을 뿐만 아니라 거래 티커 앞에 '불' 자도 붙는다
LG화학 사례는 국문 우수공시거래 기업에 해당하지만 앞으로는 영문 공시를 잘하는 기업에도 이러한 혜택을 부여할 것이라고 거래소 측은 설명했다.
[한예경 기자 / 용환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