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자살한 A씨의 부모가 교보생명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가 가입했던 보험은 A씨가 사망할 경우 7000만원, 재해사망 시 특약을 적용해 5000만원을 추가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계약의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지난 이후 자살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교보생명은 주 계약에 따른 7000만원만 지급하고 "약관은 부주의하게 실수로 적용한 것이며 고의 자살은 재해가 아니다"며 재해 특약에 따른 5000만원 지급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약관 내용을 그대로 적용해 자살보험금을 전부 지급하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교보생명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미지급 보험금을 지급할 예정"이라면서도 "다만 이번 판결이 자살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1위인 불명예 국가다. 이 때문에 과거 자살 수보다 향후 자살을 더 늘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최상위 사법기관인 대법원이 이 같은 판결을 내리자 보험사들은 그동안 미지급했던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4년 4월 현재 전체 보험사의 자살보험금 미지급 규모는 2179억원에 이른다. 각 사별로 보면 ING생명이 653억원으로 가장 많고, 삼성생명(563억원), 교보생명(223억원), 알리안츠생명(150억원) 등의 미지급 규모가 크다.
ING생명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한 후 내부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2014년 ING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자살한 고객들에게 일반사망보험금은 물론 자살보험금까지 지급하라며 과징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이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지난해 11월 1심에서 패소한 후 항소 중이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ING의 소송건은 물론 자살보험금 지급 소송이 걸려 있는 여러 보험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현재 자살보험금 지급의 문제가 되는 재해사망특약 계약들은 2010년 1월 29일 이전 계약들이다. 이후 계약들은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이 커지자 약관에 '자살은 재해가 아니다'는 내용을 명시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약관 계정 이전 계약들의 경우 계약자 중 자살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여 보험사들의 손해가 커질 우려가 높고 무엇보다도 보험금을 노리고 소중한 생명을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늘어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에서도 역시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지만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자살보험금 지급에 필요한 돈의 일부
[박준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