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하노이 중심가에 있는 쇼핑마트에서 현지 여성이 물건을 구입한 뒤 신한카드로 결제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신한은행] |
지난달 베트남 수도 하노이 중심가에 위치한 신한베트남은행 하노이 지점. 점심시간이 되자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직원들은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창구에 몰려드는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손님들 대부분은 한국 유학생이나 주재원이 아닌 현지 주민이었다. 하노이 지점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여직원 조안티투이중 씨(27)는 "바쁠 때는 하루에 30~50명이 카드를 발급받는 날도 있다"며 "최근 한류 드라마나 가요를 좋아하는 젊은 층이 신한은행에서 카드를 많이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금융사들이 성장이 정체된 한국을 떠나 해외 시장 발굴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한국 금융사들이 일찌감치 진출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이미 '금융한류'라고 칭할 만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신한은행의 베트남 진출은 '금융한류'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공 사례다. 신한은행 베트남 현지법인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해 베트남 카드시장에서 외국계 은행 중 1위, 전체 7위를 차지했다. 법인카드 분야에서는 취급액 기준 1위다. 김재준 신한베트남은행 북부 지역 본부장은 "직원들을 대부분 현지인으로 채용하고 금융상품도 현지 금융 발달 수준에 맞춘 맞춤형 상품을 팔고 있다"며 "한국과 베트남은 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현지화에 유리한 환경"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2011년 국내 금융회사 최초로 '금융 불모지'로 불리던 베트남의 카드시장에 뛰어들었다. 다른 은행들처럼 진출 초기에는 한국 주재원과 동포를 대상으로 영업에 주력했다. 당시 회원은 4500명, 취급액은 200만달러(약 23억원)에 불과했다.
신한은행 외에도 한국 금융사들의 해외 진출은 점차 가속화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모바일 뱅킹 서비스 '원큐뱅크(1Q Bank)'를 내세워 캐나다·중국에 진출한 데 이어 인도네시아·유럽·미주 지역으로 보폭을 넓힐 계획이다. KB국민은행은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와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인도네시아에서 소다라은행을 인수해 지난해 초 우리소다라은행을 출범했다.
제2 금융권도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화생명은 2009년 국내 보험사 중 최초로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 설립 첫해 18억원이던 수입보험료 실적이 지난해 372억원으로까지 증가하면서 올해 첫 흑자 전환을 노리고 있다. 동부화재도 지난해 베트남 손보업계 시장점유율 5위인 PTI를 인수한 뒤 올해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미국·영국·독일·중국·브라질 등 총 10개 국가에 진출해 있다.
해외사업이 금융사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까지 국내 은행이 해외에서 거둔 순이익은 전체 은행권 순이익의 5%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2011년부터 해외에서 흑자 행진을 이어가며 해외 순이익 비중이 지난해 기준 전체 이익의 20%에 육박했다. 국내 은행의 해외 점포는 지난해 말 기준 167개에 이르고 자산 규모는 882억달러(약 101조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한국 금융사들의 해외 진출 움직임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진출 지역이 지나치게 리스크가 높은 동남아 지역으로 집중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또 '금융한류'가 거품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단기 성과에 집중하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마진을 낮추더라도 고객 저변을 넓히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은행들이 주로 진출하는 아시아 지역은 금융서비스가 낙후돼 있고 현지 규제가 국내와 다른 경우가 많다"며 "현지화에서 성공하려면 초기에는 자금 조달 비용이 높더라도 마진을 낮춰 대출을 확대하는 등 일단 고객 기반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노이 = 정지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