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형 증권사의 한 직원이 고객 돈 20억원을 포함한 50억원 규모의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직원은 신용불량 상태인데 사기 피해자들은 "증권사의 직원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항의한다. 확인 결과 대다수 증권사의 신용불량 직원 관리 시스템이 사실상 부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용불량이 범법 행위가 아닌데 개인의 직업 선택을 제한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감독원도 신용불량자의 영업 업무를 제한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한 발 물러서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돈을 다루는 금융회사의 경우 금전적 유혹에 휘둘릴 개연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임직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5일 매일경제가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자기자본 기준 상위 5개 증권사를 파악한 결과,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을 제외한 다른 증권사는 신용불량자 파악이나 대고객 영업 업무 제한 같은 관리 시스템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셋증권은 매년 전체 직원의 동의를 구해 신용불량 여부를 파악한 뒤 문제가 있으면 후선 부서로 배치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신용 상태를 별도로 파악하지는 않으나 급여 가압류가 들어온 직원은 대고객 영업에서 배제한다고 밝혔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미래에셋그룹에 인수된 만큼 앞으로 매년 직원 신용 현황을 파악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한 증권사의 경우 해당 직원이 2014년부터 고객 20여 명에게 연간 25% 수익을 내주겠다며 사적계약을 맺고 개인 계좌로 돈을 받아 굴리다가 지난 6월 돌연 잠적했다. 회사 측은 개인적 사기·횡령 사건이므로 회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반면 투자자들은 신용불량 상태이고 사고 전력까지 있는 직원이 영업점에서 고객들을 상대하도록 한 것은 명백히 직원관리상 허점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해당 증권사는 직원관리 미흡을 인정해 피해액의 일부를 보상하는 형태로 합의를 진행 중이다.
증권사의 신용불량 직원 관리 문제는 개인 직업 선택의 자유냐, 금융회사의 엄격한 투자자보호 의무냐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증권유관기관의 한 임원은 "회사가 신용불량 직원을 일선 영업점에 배치한 건 큰 문제"라면서 "내부통제에 허점이 노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증권사 한 관계자는 "영업을 원하는 직원에게 신용상태를 이유로 막는 건 마치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신용불량을 이유로 증권사 직원의 영업 업무를 못하게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투자협회는 2002년 신용불량자의 영업 업무 배제를 협회 자율규제로 추진하려 했으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신용에 문제가 있는 직원의 경우 돈에 대한 유혹에 쉽게 흔들릴 개연성이 있는 만큼 고객의 돈을 직접 굴리는 업무에서는 배제하고 일반관리 업무를 맡기는 쪽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최재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