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100억원 정도는 어렵지 않아요. 여기서 화장품 가게 놓을 만한 빌딩 없을까요?”
지난달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 중국 중년 여성 서너명이 빌딩 쇼핑에 나섰다. 중소형 빌딩 전문 중개업체 리얼티코리아는 압구정동 성형 관광을 겸해 방문한 중국인들에게 가로수길 등 강남 주요 상권 대로변을 중심으로 100억~200억원대 건물들을 소개했다. 이진석 리얼티코리아 이사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움직이는 유커(遊客)에서 개별적으로 여행하는 싼커(散客)로 바뀌면서 가로수길이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며 “이때문에 중국 부유층들이 강남 상가빌딩 투자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 부동산 시장에 중국인들 부동산 투자 바람이 거세다. 부동산 투자이민제 대상 지역인 제주도와 부산에 집중됐던 중국인의 부동산 투자가 최근 홍대 상권을 중심으로 연희동·연남동·망원동으로확산되고 가로수·세로수길 등 강남까지 넘어오고 있다.
서울 반포의 한 중개업소 소장은 최근 대리인과 함께 찾아온 한 중국인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 한국 관련 사업을 한다는 중국인은 “중국 부동산시장은 거품이 곧 꺼질 것 같아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지 않은 한국 부동산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싶다”며 “반포 래미안퍼스티지나 아크로리버파크 열 채를 한꺼번에 살 수 있냐”고 물었다. 국제학교 다니는 딸 때문에 제주도 대형 리조트를 분양받은 중국인 B씨(50)는 최근 부쩍 자주 서울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는 “제주도에 살아보니 베이징보다는 저렴한 서울 아파트를 한채 보유하는게 나을 것 같아 물건을 보러다닌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중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서울지역 토지는 지난 1분기 현재 3516필지(15만9375㎡)로 지난해 말 3192필지(15만3109㎡)보다 석달 사이에 10.2% 늘었다.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중국인들의 서울 땅투자는 매년 40%씩 급증하고 있다. 작년말 공시지가 기준으로 7884억5000만원이다. 통상 실거래가는 공시지가와 2배 가량 차이나는 점을 감안하면 1조5000억~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자치구별로 보면 마포구에서 중국인이 매입한 토지는 지난 2분기 현재 235필지(8785㎡)로 3년여 전인 2012년 말(128필지·2812㎡)보다 83.6% 급증했다. 강남구의 경우 토지 120필지(8136㎡)를 중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지난 2012년(62필지·6720㎡)보다 두 배 가량 늘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경제가 성장하면 해외 주요 도시 부동산에 관심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제주도에서 어느 정도 재미를 본 중국인 입장에서는 서울로 눈을 돌려 중국인에게 익숙한 연남동 등에서 소규모로 투자하다가 차츰 강남으로 이동해 크고 비싼 부동산을 사들일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중국 대형 개발사들은 서울 대형 오피스빌딩이나 랜드마크급 프로젝트 투자에 관심이 뜨겁다.
최근 매물로 나온 명동 옛 외환은행 본점 빌딩은 최근 유력 인수 후보자로 최대 부동산·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완다그룹과 동양생명과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을 인수한 중국 안방보험 등 중국계 그룹들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암 DMC랜드마크 부지와 마곡지구 특별계획구역 부지 매각 등은 중국 녹지그룹
전문가들은 중국 자본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개발 사업 물꼬가 트이고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지역 경제 파급 효과가 떨어지고 자칫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임영신 기자 / 김인오 기자 / 이윤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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