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자살보험금’ 소멸시효 논란에 대해 대법원이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 됐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30일 교보생명이 고객 A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A씨의 자살보험금 청구권은 소멸시효 기간이 완성돼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쉽게 말해 ‘보험사고 발생 후 2년(3월 이후 3년)이 경과하도록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계약’은 소멸시효가 지난 계약으로 본다는 것이다.
재판에서는 교보생명이 주계약에 따른 생명보험금만 주고 특약에 따른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는데, 수익자가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나도록 청구하지 않았다면 자살보험금을 주는 게 타당한지를 다퉜다.
대법원의 판결로 자살보험금 소멸시효 논란은 일단락되면서 교보생명을 비롯해 삼성생명 등 주요 보험사들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보험사들이 미지급한 자살보험금 규모는 현재 파악된 것만 2465억원이다. 보험사들은 2010년 4월 이전 작성한 일부 약관에 ‘가입 2년 후에는 자살 시에도 특약(재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했는데 이것이 ‘실수’에서 비롯했다며 소송을 통해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뤄왔다.
최근 대법원은 자살보험금을 약관대로 지급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지만, 이번처럼 소멸시효가 다뤄진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이번 논란이 보험사가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귀책사유’에서 초래된 만큼 재판에서는 승소 했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사가 잘 못 만든 ‘약관 실수’로 시작된 자살보험금과 유사한 분쟁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소비자 보호를 위한 대응책도 요구된다.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의 본질은 보험사가 당초 약관에 따라 재해사망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초래된 것으로 보험사 ‘귀책사유’가 쟁점의 핵심이다.
즉 소멸시효와는 애초부터 무관한 것인데, 보험사들은 소멸시효로 법적 분쟁을 진행하고 쟁점을 흐렸다. 이 까닭에 일각에선 “사법부가 보험사에 놀아났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또 지키라고 만든 약관을 스스로 어긴 보험사에 대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사기꾼”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지난 5월 23일 자살보험금 관련 브리핑에서 권순찬 금감원 부원장보는 “(자살보험금 사태는)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고 사망 후 2년이 지나 소멸시효를 다투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당하게 청구된 사망보험금을 보험사가 약관과 다르게 고의로 주계약과 특약에 기재된 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일부만 지급한 것으로 (보험사들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일반사망보험금과 재해사망보험금을 각각 신청해서 받는 곳은 없다. 사람은 두 번 죽지 않기 때문에 사망보험금은 한 번만 청구한다는 얘기다.
설령 보험사 주장대로 수익자가 각각 신청해서 따로 일반사망보험금과 재해사망보험금을 받아야 한다면, 사전에 약관에 각각 신청하라는 내용을 명백하게 표시했어야 하고 보험 가입 시 분명하게 알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보험사 약관 어디에도 없고 사전에 알리지도 않았다.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할 때 보험사가 당연히 재해사망보험금도 함께 지급했어야 하는데, 이를 감추고 소멸시효 경과를 주장한 것은 보험사들의 ‘이중성’을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란 비판도 이어진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은 “이번 판결로 보험사의 약관 작성 오류로 발생된 건에 대해 계속해서 보험사에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소비자들은 앞으로가 더욱 걱정스럽고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보험사에 대한 금감원의 검사 강도는 한 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줄 곧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자살보험금 지급을 주문한 금감원과 “못 주겠다”며 버티던 보험사와의 갈등이 이번 대법원 판결로 더욱 심화될 것이란 얘기가 안팎에서 들린다.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김선동 의원이 소멸시효가 완성된 자살보험금 지급을 위해 소멸시효 특례를 적용하는 ‘재해사망보험금 청구기간 연장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하겠다고 밝혀 귀추
김 의원은 “대법원 판례 취지와 금융당국의 입장, 그리고 소멸시효 완성분에 대해서도 보험금 지급을 결정한 보험사 등 모든 사항을 고려해 볼 때, 보험사가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라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디지털뉴스국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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