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7월 '삼성합병' 무산됐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최순실 사태'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민연금이 해당 합병 건에 대해 부당하게 찬성표를 던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글로벌 기관투자가는 물론 국내 기관투자가 등이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그룹 경영권을 통째로 노렸다는 정황이 높은 상황에서 해당 합병이 무산됐다면 국내 다른 그룹 경영권까지 위협받을 뻔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7월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옛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 결과는 '엘리엇 vs 삼성' 구도에서 투자자들의 표심 향방을 분명히 보여줬다. 옛 삼성물산 주주 중 84.72%가 합병 안건에 투표하며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통상 합병 관련 주총 투표율이 60~70%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전체 주주 중 58.91%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투표 참석 주주 10명 중 7명 가까이가 합병에 찬성했음을 뜻한다.
합병 주총 이전 하나UBS자산운용(당시 지분율 0.02%)을 시작으로 국민연금(11.21%), 사학연금(0.34%) 등 국내 연기금과 한국투자신탁운용(3.20%), 신영자산운용(0.30%) 등 국내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은 대부분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연금과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찬성표 지분율은 총 22.26%에 달했다.
여기에 외국인 투자자와 소액주주들도 가세했다. 합병 찬성 지분율은 외국인 투자자가 7.27%, 소액주주 9.60%에 달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GIC(당시 지분율 1.47%)도 합병 찬성에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물산 합병 작업에 참여했던 복수의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합병 과정은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투자자를 설득하는 삼성그룹의 전사적인 총력전이었다"며 "내부 감사 규정이 깐깐하기로 유명한 GIC 등이 합병을 찬성한 데는 합병 취지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 아니냐"고 반문했다.
당시 사학연금은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물산·제일모직뿐 아니라 다른 삼성그룹 주가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수익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단기 이익을 노리는 엘리엇을 편들기보다는 장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합병에 찬성했다는 설명이다. 다른 국내외 기관투자가들도 비슷한 이유로 찬성표를 던졌다.
이 같은 수익률 논리보다 더 크게 작용한 점은 '국익'이라는 무형의 이익이다. 당시 엘리엇은 옛 삼성물산 보유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지분을 주주들에게 현물 출자하라는 이례적인 요구 조건을 내걸었다. 이런 요구가 현실화할 경우 엘리엇뿐 아니라 다른 헤지펀드까지 지분율 경쟁에 가세해 삼성전자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등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국내 대표 기업 경영권이 고스란히 넘어가 '제2의 넷앱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우람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