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 투명회계 대책
금융위는 12일 분식회계 가능성이 높은 기업 등에 외부감사인 지정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회계투명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김용범 금융위 사무처장은 "모든 기업에 외부감사인을 전면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기존에 잘하는 기업에까지 지정제를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업,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 등을 대상으로 지정제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외부감사인 자유선임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지정 사유를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현재 금융위는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 등에 한해 증권선물위원회가 외부감사인을 강제 지정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실제 적용되는 기업은 2015년 기준 상장기업의 7% 수준에 불과하다.
김용범 사무처장은 "회계투명성이 떨어지는 업종이나 재무구조상 소유·경영이 분리되지 않아 분식회계 위험이 높은 기업 등을 지정제 대상으로 선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 기업에는 일정 기간 자유선임 후 3년간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도록 하는 혼합선임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감사인은 기업이 기존 감사 회계법인이 아닌 다른 회계법인 3곳을 추천하면 금융당국이 1곳을 지정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구체적인 지정 기준과 대상은 이달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 같은 정부안에 상장사와 회계업계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상장사들은 모든 기업에 전면적으로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되지 않은 데 안도하는 분위기다.
상장사 관계자는 "회계 문제가 없는 기업에까지 감사인 지정을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지정감사가 늘어나겠지만 기업들에 제한적이나마 감사인 선택권까지 부여한 것은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외부감사인 지정제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회계업계와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회계업계는 일정 기간 자유선임 후 3년간 지정감사하는 혼합선임제와 6년 자유선임 후 1년은 감사인 2곳이 외부감사하는 이중감사제를 주장하고 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9개 사업연도 중 3개년은 반드시 지정감사를 받도록 하는 '6+3 혼합감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채 의원은 "선택지정제나 감리 확대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며 "분식회계 같은 시장 실패를 막으려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기업은 비용 부담을 얘기하지만 지정감사제를 도입했을 때 신뢰도가 높아지는 실익이 더 크다"며 "향후 입법 논의에서 정부안과 혼합선임제를 같이 논의해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는 회계법인에 대한 감사 권한과 책임도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회계법인의 감사 품질을 점검해 등급이 낮은 회계법인에 아예 상장사 감사를 금지할 방침이다. 현재는 일정 규모 이상의 회계법인은 모두 상장사를 감사할 수 있게 돼 있는데 감사 품질을 평가해 부실 회계법인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또 한국공인회계사회를 통해 감사시간과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최저 감사시간을 자율 규제할 방침이다. 감사보수는 직접 건드리지 않는 대신 업종별 최저 감사시간을 정해 감사보수를 합리화하는 동시에 감사 품질도 높이겠다는 의도다.
앞으로 회계법인은 외부감사를 하면서 기업의 내부 회계관리 상태도 철저히 감사하고 검토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그동안 회사 내부 회계관리에 대해 구두로 설명을 듣고 검토만 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증빙 자료를 받고 감사해 그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
감사 대상 회사뿐 아니라 자회사에 대해서도 컨설팅 업무가 대폭 제한된다. 현재 허용되고 있는 감사 대상 회사에 대한 매수 목적의 인수·합병(M&A) 관련 업무가 앞으로는 금지된다.
금융위는 또 현재 수주 산업에만 적용되는 '핵심감사제'를 단계적으로 상장기업 전체로 확대하기로 했다. 핵심감사제는 외부감사인이 핵심감사 항목을 정해 중점적으로 살핀 뒤 그 내용을 보고서 등을 통해
금융감독원의 상장법인 감리 주기는 현재 25년에서 10년으로 줄여 나가기로 했다. 또 회계 부정에 대한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상 제재를 원칙적으로 자본시장법상 최고 제재 대상인 불공정거래 제재 수준으로 상향할 방침이다.
[김대기 기자 / 배미정 기자 / 전경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