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은 8일 서울 여의도동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우조선해양 유동성 확보 방안을 놓고 관계 당국과 고심 중"이라며 "다음달 중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은 4월에 4000억원이 넘는 회사채 만기물량이 몰리는 데다 오는 11월까지 총 94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순차적으로 돌아와 유동성 바닥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채무 재조정과 추가 신규 자금 투입을 골자로 한 조건부 자율협약 등을 통한 구조조정 단계 상향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정용석 기업구조조정부문 부행장도 이날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며 "다음달 중순 구체적인 (해결) 방안 논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은 현재 4월 위기설에 직면한 대우조선해양 유동성에 대한 실태 점검을 위해 전문기관 실사를 벌이고 있다. 실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추가 필요자금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설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2015년 10월 대우조선해양에 한도성 여신 형태로 4조2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실탄은 7000억원 정도다.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4월 24일까지 약 3개월 동안 건조자금 등 자금이 소진되면 회사 유동성이 회사채 상환액 4400억원을 밑돌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수주 산업 특성을 감안해 대우조선은 정리보다 회생에 무게를 둔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며 "'혈세 투입 논란' 역시 감당할 수밖에 없는 비용"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남은 자금 여력을 회사채 상환에 모조리 쓸 경우 회사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국민 혈세로 채권 투자자 배만 불렸다"는 비판에서 정부와 산업은행이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산업은행은 조건부 자율협약 등 구조조정 단계 격상을 통해 11월까지 순차적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9400억원에 대한 채무 재조정과 더불어 추가 자금 지원을 검토하고 있지만 '무분별한 혈세 투입' 논란 우려로 공식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혈세 투입은 신중해야 한다"면서도 "회사채 만기 상환 일정이 닥쳐오는 것 때문에 머리가 무겁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소홀함 없이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혈세 투입 논란에도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하면 정부와 채권단은 신규 자금 투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선금을 받고 3년가량 대형 구조물을 지어 잔금을 받는 대형 수주산업 특성상 계약 취소를 야기할 수 있는 법정관리(통합도산법에 따른 기업회생절차) 카드를 쓰면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회장은 "(2015년 10월) 서별관회의에서 4조2000억원 지원을 논의해서 지난해 3조5000억원을 지원한 결과 66척의 배가 완공돼 약 9조원의 재원이 국내로 상환됐다"며 "국가적으로 봤을 때 큰 리스크를 줄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또 "(대우조선해양이) 나쁜 상황이 돼 (짓던 선박이) 고철로 팔린다면 금액으로 환산하면 57조원에 해당하는 손실이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건부 자율협약이 개시되면 회사채 투자자들이 원금상환유예나 출자전환 등 채무 재조정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은행권 대출 만기 연장 등 자금 지원이 유지되는 '벼랑 끝 결정'을 이해관계자들이 내려야 한다. 한편 이 회장은 "경영환경 악화와 수주절벽 등 현실적인 문제로 3월 예정된 상장(주식 거래 재개)이 늦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정석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