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 얘기다. 오는 24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전기 학위 수여식에서 건축학 박사를 받는 6명 중 1명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김 회장은 사실 학부를 서울대 건축학과에서 마친 엘리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학문에 관심이 많은 '범생'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1967년 말 고교 3년 과정을 모두 끝낸 직후 한 친구를 구타했어요. 무기정학을 당하는 바람에 다음해 1월 있었던 전기 대입 시험 때 원서조차 낼 수 없었죠. 후기 대학이라도 가길 원하던 아버지와 다퉈 가출도 했고요. 결국 재수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박사 학위까지 따게 된 것은 무심코 던진 말에서 비롯됐다. 삼성물산 현장소장 시절 직원들과 워크숍을 했는데 자신이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순서가 있었다. 김 회장은 본인 순서에서 얼떨결에 박사 학위가 꿈이라고 밝혔다.
말이 씨가 됐다. 중동에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2년 반을 근무하는 동안 건설사업관리(CM)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CM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영국 유학을 준비해 합격통지서도 받았지만 학비가 워낙 비싸고 장학금을 받지 못해 포기했다.
그 대신 서강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지만 깐깐한 학사관리 규정을 지키지 못해 결국 퇴학당했다. 한미파슨스 대표이사로 있던 2001년 우연히 서강대 경영대학원 교칙이 바뀌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2002년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에 입학한 지 17년 만이었다.
하지만 박사 학위에 대한 미련이 남아 2003년 다시 서울대 건축대학원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마흔 살 이상 어린 학생들 옆에서 책과 씨름했다. 2015년 박사 과정에 들어간 지 12년이 넘어가자 서울대 학칙에 따라 다시 2학기에 걸쳐 3개의 과목을 들어야 했다. '이 나이에 아직도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하나' 자괴감도 들었다. 그때마다 60세 넘어서까지 박사 학위를 따고자 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저에게는 44년의 실무경험이 있습니다. 후배들과 회사 임직원들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에 제가 가진 노하우를 모두 담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시공 전 활동이 충성고객을 만드는 데 미치는 영향'이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시공이 중요시되지만 김 회장은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계획·
"자동차를 생각해보세요. 자동차 설계와 디자인이 제대로 안돼 있다면 어떻게 좋은 차가 나오겠어요? 건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내가 얻은 지식과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며 "내가 가진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나누는 것은 나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용환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