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이 서울에선 가장 번화한 곳 아닌가요. 그런데 (지하도로 들어오니) 길이 어느 방향으로 나있는지도 모르겠어요. 30분을 헤맸는데 나중에 보니까 10분이면 올 거리였더라고요."
한국에 관광 온 싱가포르인 저우쥐링 씨는 서울 강남역에 왔다가 지하도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맸다. 강남역 지하도 상가 안에 길이 미로 같아 방향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싱가포르 메인가로인 오차드로드는 지하도로 상점들이 연결돼 있어도 길찾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며 "외국인들은 헷갈리기 쉬운만큼 안내표시라도 자세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남역 일대를 스쳐가는 사람은 하루 100만 여명(강남구 자료)에 이른다. 서울 인구 10명 중 1명은 매일 이곳을 지나간다. 최근 발표된 '2016 서울 대중교통 이용 현황' 조사에서 강남역은 이용자 수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으로도 꼽혔다. 하루 평균 19만9596명이 이용했다. 20년째 압도적인 1위다.
강남역은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대한민국의 얼굴이 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작년 강남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약 773만명으로 2015년에 비해 32.6%가 늘었다. 이 가운데 강남역은 압도적인 강남 지역 관광지 중 1위다. 하지만 강남역이 외국인들에게 주는 첫 인상은 상당히 불편하다. '강남역에서 길을 잃었다'는 저우쥐링 씨의 얘기는 이곳을 처음 나갔던 한국 사람 조차 충분히 경험하는 일이다. 테헤란로에 거대한 오피스 빌딩 군락이 만들어졌지만 바로 한 블록 뒤만 들어가도 유흥가와 소규모 점포가 난립해 있고, 이면도로는 구불구불 이어진다. 이정형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는 "강남역은 지하상가를 제외하고는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보행전용 쇼핑몰도 없다"며 "상하이 남경로, 싱가포르 오차드로드, 도쿄 긴자거리 같은 상징가로도 없다"고 설명했다.
강남역은 1982년 12월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 본격적인 확장이 시작됐다. 이곳을 중심으로 강남대로와 테헤란로 개발이 본격화됐다.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로 영동(永東)이라 불리던 지역이 반세기 만에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됐지만, 통합개발의 개념 조차 없었다. 구도심스러운 특성은 벗어던지지 못한 셈이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인 강남역 일대지만 공간의 활력은 오히려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 따르면 강남역의 '거리 활력지수'는 신촌이나 서래마을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거리 활력지수'란 사람이 모이는 정도(보행량) 뿐만 아니라 보행자의 활동 유형, 활동 시간 등을 통합해 100점 만점으로 산출하는 것이다
강남역 일대의 평균 활력지수는 16.5점에 불과했다. 1∼10단계 구분(단계가 높아질수록 활력지수가 낮음) 조사에서도 조사지역 12곳 중 10곳이 9, 10등급으로 평가됐다. 여유 공간이 거의 없는 테헤란로 5길의 이면도로는 활력지수가 0점이었다. 반면 서래마을의 평균 활력지수는 57.3점, 신촌 일대의 평균 활력지수는 35.5점이었다. 부동산 디벨로퍼인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통합적인 마스터플랜으로 만들어지지 않아 실내 공간과 이동하는 공간이 분절된 극단적인 사례가 강남역"이라며 "메인가로스러운 시원시원함도, 작은 소로의 아기자기한 재미도 없어서 유동인구가 모두 흘러나간다"고 밝혔다.
물론 강남역이 마스터플랜에 따른 통합개발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준공된 삼성 서초사옥 건설은 강남역 일대를 크게 바꿀 좋은 기회였지만 초고층 업무빌딩과 아파트 몇개 동을 지은 '삼성 타운'으로 끝났다. 바로 지척인 강남역과 연결통로조차 없다. 강남역이나 주변 다른 건물과의 연계성, 개방을 통한 시민과의 소통 등 이른바 '타운형 개발'과는 거리가 멀다.
건설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초 삼성이나 서초구청도 강남역 일대와 연계된 복합개발을 추진했지만 반재벌 정서에 부딪혀 좌초됐다"며 "삼성 사옥에 과감히 규제완화를 제공하고 개발이익을 강남역 일대 정비로 환원했다면 아시아는 대표하는 거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강남역 개발은 밑그림부터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최근 경부고속도로 진입구간 지하화, 서초동 롯데칠성 부지 통합개발 등 굵직한 사업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라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 주장도 나온다.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강남역과 경부고속도로 등 주변 지역을 통합개발하는 것은 단순히 이 지역에 국한된 아젠다가 아니라 통일 시대를 대비해 서울과 수도권을 아우르는 국가적 대계"라며 "정부와 기업 사이의 긴밀한 민-관 파트너십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진행 중인 삼성동 한전부지 개발 등도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정형 교수는 "삼성역에 지하철 9호선, 일산-삼성을 연결하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수서-창동
[손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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