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등하는 원화값 / 장중 1114원까지 올라 ◆
↑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장중 한때 1114원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상승폭을 반납하면서 전일 대비 0.2원 하락한 1120.3원으로 장을 마쳤다. 미국 금리 인상 후 급등했던 원화값은 5거래일 만에 소폭 하락했다. 사진은 국내 시중은행 한 딜링룸의 모습. [한주형 기자] |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장중 한때 1114원까지 치솟았다가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결국 전날 종가보다 0.2원 하락한 1120.3원으로 장을 마쳤다. 장중 최고치인 1114원은 지난해 10월 11일 기록한 장중 저점 1108.50원 이후 5개월여 만에 최고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직후 불과 4거래일 만에 29.6원이나 급등한 셈이다. 21일 장 막판에는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언제 다시 1100원대를 위협할지 모를 기세다.
시장에선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것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이후 달러화는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정정책·감세안 등 불확실한 달러 강세 변수보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입에 주목하면서 달러 약세의 여파는 이어지고 있다.
수출 호조에 따른 원화 강세도 달러당 원화값 급등을 견인했다.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8% 늘어난 273억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석유제품(62.2%)과 반도체(42.5%) 등의 수출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그만큼 외환시장에서 삼성전자·LG화학 등 수출 업체들의 원화 교체 수요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수출 호조에 더해 한국 증시가 저평가됐다는 인식에 따라 외인자금이 몰리면서 원화 강세에 불을 붙였다. 이날 코스피는 2180선을 돌파하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또 원화 강세에 따라 환차익을 노린 외인자금까지 국내 주식 추가 매수에 나서면서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또 지난 주말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모든 형태의 보호주의를 배격한다'는 문구가 빠지면서 외환시장에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유효하다는 판단을 한 것도 원화 강세를 부추겼다.
한마디로 미국 금리 인상 이후 달러화가 약세 기조로 돌아선 가운데 국내 업체들의 수출 대금 유입과 한국 증시로 몰린 외인자금이 원화 강세를 견인하는 모양새다. 게다가 외인들의 원화 매수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오는 4월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한국 정부가 손발이 묶여 원화 급변동에 따른 최소한의 스무딩 오퍼레이션에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민경원 NH선물 연구원은 "이날 시장에서 1100원 선을 지키기 위해 일정 부분 당국이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원화값 상승 속도를 조절하라는 시그널로 향후 역외시장 반응에 따라 스무딩 오퍼레이션의 효과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달러 대비 원화값이 빠르게 오르면서 산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화값 변동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상당수 기업이 통화 상품을 활용하고 있지만 가파른 상승 또는 하락은 실적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높은 가전 업계와 자동차 업계는 환율 추이를 지켜보며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달러당 원화값이 10원 오르면 국내 자동차 산업 매출이 4200억원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원화값 상승이 바로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매출이 줄어들면 수익성에 영향을 주고 이는 마케팅 여력을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자동차 업체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며 "가뜩이나 미국 금리 인상으로 소비심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중고를 겪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가전 업계는 적극적인 통화 매칭을 통해 환율 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각오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글로벌 경영을 하면서 현지 통화 결제 비중을 꾸준히 높여왔다"며 "예를 들어 100달러가 들어올 때쯤 100달러의 지출이 있도록 만들어 환율 영향을 최대한 상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 비중이 높아 환율 영향이 큰 LG전자는 통화 스왑과 헤지를 꾸준히 활용하고 있다. 미국 달러는 기본이고 환율 변동이 큰 브라질 헤알화에 대해서도 미국 달러와 통화 스왑을 체결한 상황이다. 유럽 쪽 환율 변동을 줄이기 위해 스위스 프랑과도 통화 스왑을 맺고 있다.
원화값 상승이 모든 산업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원유를 도입할 때 달러로 결제하는 정유 업계는 원화값이 오르면 환차익이 생긴다. 지난해에는 원화값 하락으로 환차손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반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환율 흐름이 이어지면 지난해 8조원을 넘어서는 사상 최대 실적도 기대
[이승훈 기자 / 이승윤 기자 / 김종훈 기자 / 부장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