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충분한 시간과 자료 탓에 더 힘든 선택이었습니다. 삼성 합병 사건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런 상황을 맞아 조직원들 모두 힘들어했습니다."
17일 새벽 서울 모처에서 열린 투자위원회를 마치고 나온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을 만났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강 본부장은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책임 회피를 위해 결정을 미룬 것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더 건지려고 최선을 다 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국민연금이 책임 회피를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은 것에 억울함을 표시한 것이다. 강 본부장은 "500조가 넘는 거대 기금을 운용하면서 손실과 리스크에 대해서 최대한 꼼꼼하게, 따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무엇보다도 시간과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기에 더 어려웠던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분석의 기초가 되는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제표가 '분식회계' 및 '한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탓에 신뢰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때문에 외부 기관에 실사보고서 등에 대한 자문을 받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할 수 없었다. 애초에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을 주고 손실을 떠안으라 강요한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이 무리한 요구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강 본부장은 "모든 투자 판단의 기초는 재무제표다. 이것이 흔들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강 본부장은 "삼성 합병건에 대한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일이 터져 기금운용본부 조직원들 모두 큰 부담을 느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국민연금 투자위원회는 12명의 투자위원들이 참석해 찬반을 놓고 토론한 뒤 찬반을 택하는데, 이 때 과반수 이상이 택한 쪽을 최종 입장으로 결정한다. 실장급 투자위원들 대부분이 '최순실 사태'로 검찰 조사와 압수수색 등을 경험한 이들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목이 집중되는 선택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모두 부담스러워 했다는 설명이다.
이번 결정의 제1 원칙은 '기금 손실 최소화'였다.
[김효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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