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새벽 서울 모처에서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 안건에 대한 투자위원회를 마치고 나선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사진)을 만났다. 국민연금은 이날 새벽 회의를 마친 직후 채무재조정안을 전격 수용했다고 발표했다.
지친 표정이 역력한 강 본부장은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책임 회피를 위해 결정을 미룬 것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더 건지려고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회수율이 50%든, 10%든 이 숫자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자율적 구조조정 방안(50% 출자전환, 50% 상환유예)'이나 'P플랜(Pre-packaged Plan)' 중 어느 쪽도 국민연금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 본부장은 "확실히 보장한 게 아무것도 없어 산업은행에 한발 더 나아간 무엇인가를 달라고 끝까지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얻어낸 게 256억원이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3887억원 가운데 실사 결과 산출된 청산가치(6.6%)라도 확보한 것이다. 산업은행은 모든 사채권자에 회사채와 기업어음(CP) 1조5500억원의 청산가치분(6.6%)에 해당하는1000억원을 우선 상환하기로 약속했다.
강 본부장은 "500조원이 넘는 거대 기금을 운용하면서 손실 위험에 대해 따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책임 회피를 위한 시간 지연이란 주장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이번 국민연금 결정에 있어 제1 원칙은 '기금 손실 최소화'였고, 제2원칙은 '특정 기업을 지원하는 데 기금이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강 본부장은 "특정 기업을 지원하려는 것이 아니고 투자 손실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라며 "앞으로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투자건과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국민연금의 선택은 이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간과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더 어려웠던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분석의 기초가 되는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제표가 '분식회계'로 드러났고 회계감사 의견이 '한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탓에 신뢰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강 본부장은 "모든 투자 판단의 기초는 회사의 재무제표다. 이것이 흔들렸기 때문에 판단이 어려웠고,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외부 기관에 자문을 받으려고 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는데 한 달도 안되는 시간에 손실을 떠안을지를 결정하라고 강요한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이 무리한 요구를 한 것 아니냐는 하소연이다. 강 본부장은 "삼성물산 합병건에 대한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일이 터져 기금운용본부 조직원들 모두 큰 부담을 느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국민연금의 투자위원회는 강 본부장을 포함해 실장과 팀장 등 총 12명의 투자위원이 참석해 토론한 뒤 찬반을 택하는데, 이때 과반수가 택한 쪽을 최종 입장으로 결정한다. 투자위원들 대부분이 최근 '최순실 사태'로 검찰 조사와 압수수색을 경험한 이들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부담스러운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에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그는 "투자회사의 부실 징후를 좀 더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앞으로 투자 이후 리스크 분석과 관리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투자건과 같이 투자 회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보다 빨리, 또 정확히 감지해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후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를 미리 처분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부실 징후를 발견했을 때 조기상환이나 매각을 통해 손실을 줄였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으로선 이 또한 억울하다는 주장이다.
2015년 8월 대우조선해양이 분식회계로 발생한 손실을 반영하는 바람에 부채비율이 7000%로 급등해 발행 당시
[김효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