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기모 메리츠證 CRO 인터뷰
이 같은 '성적표'에도 금융투자업계에선 5조원이 넘는 우발채무(채무보증)를 두고 메리츠의 위기를 논하고 있다. 메리츠는 그동안 시공사가 대출을 받을 때 보증을 서는 식으로 수수료 수익을 쌓아왔다. 다만 시공사가 빚을 갚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메리츠가 떠안아야 하고 이를 잠재적 손실로 인정하는 게 우발채무다. 작년 9월 말 기준 메리츠의 자산 순위는 증권사 중 10위지만 우발채무는 5조446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사상 최고 수준의 이익률과 사상 최대의 우발채무라는 '양날의 검'을 갖고 있는 메리츠를 지난 17일 방문해 길기모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전무·50)를 만났다.
길 전무는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우발채무 수준은 전체의 20%인 1조원"이라며 "우발채무를 장·단기로 분산한 데다 메리츠의 현금성 자산은 1조원이 넘어 재무 위기가 현저하게 낮은 편"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길 전무는 "영업이익의 절반이 부동산 투자에서 나온다"고 전제한 후 "이 같은 고수익 사업을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데 우리는 사장에서 실무자까지 모두 '계급장' 떼놓고 난상토론을 통해 위험도가 낮은 검증된 딜(거래)에만 참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평적 위험관리 시스템이 메리츠의 강점이라고 요약했다. 이 같은 강점은 2015년 현대상선 거래에서 빛을 발했다. 당시 현대상선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현대증권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했지만 금융권에선 자산가치 대비 대출 규모(LTV)를 들어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메리츠 위험관리본부가 보는 시각은 달랐고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최희문 사장을 설득했다. 길 전무는 "LTV가 높긴 했지만 당시 현대증권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5배에 불과해 지나친 저평가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험한 딜이 전혀 아니었다"며 "현대증권 지분(22.5%)을 담보로 2500억원을 신용공여해줬는데 만약 당시 딜이 실패한다면 메리츠가 현대증권을 인수하는 것으로 오히려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담보가치를 5000억원 이상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직접 떠안거나 인수해도 되는지를 위험 관리 척도로 삼기 때문에 투자은행(IB)이나 부동산이 지속가능한 주력 사업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상선 거래에 참여한 이후 고위험 딜에 유능하다는 소문이 나자 일감도 늘고 있다. 길 전무는 "두산그룹과 같은 구조조정 관련 그룹에서 IB 기회가 꾸준히 나타나고 있어 자연스레 부동산 집중 현상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해외 부동산 투자도 늘고 있다. 메리츠는 작년 10월 국내 기관투자가들과 함께 독일 본에 있는 도이치텔레콤 글로벌 본사 사옥을 약 2640억원에 사들였다. 그는 "작년에 4건의 굵직한 딜을 성사시킨 데 이어 지속적으로 우량 해외 부동산 빌딩 투자에 참여할 것"이라며 "해당 딜이 많지는 않지만 전체 금액의 3%대 수수료 수익이 가능하고 투자자 모집도 용이하다"고 전했다. 길 전무는 지난 2010년 취임한
■ <용어 설명>
▷ 우발채무 : 향후 일정한 조건에 따라 채무가 되는 불확정 채무를 뜻한다. 시공사가 대출을 받을 때 금융사가 이를 보증하는데 만약 시공사가 빚을 갚지 못하면 금융사에 일부 전가될 수 있다.
[문일호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