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위, 실손보험료 인하 압박
21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주요 손해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모두 100%를 넘는다. 손해율이 100%를 넘는다는 것은 가입자에게 받는 보험료보다 가입자에게 지급하는 보험금이 더 많다는 뜻이다. AIG손해보험은 손해율이 221.5%에 달하고 흥국화재와 MG손해보험도 각각 144%에 달하는 등 실손보험 운영으로 적자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실손보험 대책은 이 같은 업계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보험료 인하에만 방점을 찍었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은 "보험료 산출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고 실손보험 적자가 계속되는데도 정부는 단순히 건강보험 보장 확대에 따른 반사이익만 강조해 보험료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며 "업계 차원에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공동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민감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업계 의견을 묻는다거나 하는 협의 과정이 전혀 없었다"며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강력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실손보험료 인하 유도 근거로 내세운 보험사 '반사이익'도 실체가 없다는 주장이다. 2013~2015년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되면서 원래는 보험사들이 지급해야 할 실손보험금 1조5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는 게 정부 논리다. 이 정도 규모의 반사이익을 본 만큼 보험료 인하를 통해 가입자에게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A보험사 관계자는 "정부가 실손보험료 인하 유도 근거로 삼은 보건사회연구원 연구 결과는 그동안 업계에서 꾸준히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던 통계"라며 "반사이익을 얻었다면 지금처럼 실손보험 분야에서 적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부 의료인이 소비자들의 '의료쇼핑'을 유도하기 위해 또 다른 비급여 항목을 발굴하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건강보험 보장 확대로 보험사가 반사이익을 봤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 환자에게 갖가지 비급여 진료를 권유해 수익을 올리는 의료인은 정부가 일부 비급여 진료를 급여 진료로 바꿔 건강보험 보장 비율을 높인다고 해도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다른 비급여 진료를 추가로 권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보험사들의 실손보험금 지급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꾸준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업계는 2015년 당시 금융당국이 보험산업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한 보험 가격 자율화 정책이 불과 2년 만에 사실상 폐기 처리된 데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2014년 실손보험료 인상폭을 연 25%로 묶어 놨던 규제가 이듬해부터 점차 완화돼 올해 35%로 폭이 확대되고 내년에는 아예 없앨 예정이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오히려 다시 2014년 수준으로 돌아가게 됐다.
특히 실손보험료 인상의 주원인인 과도한 비급여 진료비를 통제하는 근본 대책 없이 일방적인 보험료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의료쇼핑과 이에 따른 과잉 진료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부터 가격 경쟁을 유도한다며 전국 병원별 비급여 진료비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한 것도 전체 비급여 진료의 90%를 차지하는 의원급은 빠졌고 병원 이상급만 포함돼 있는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이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매긴 의료기관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 독일의 경우 비급여 진료비가 급여 진료비 대비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해당 의료
업계에서는 비급여 진료비 통제로 과잉 진료를 막으면 자연스럽게 보험료가 내려가는 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업계 현실을 무시한 보험료 인하만 밀어붙이기 전에 의료계 과잉 진료와 의료쇼핑을 막는 근본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