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기금은 연기금·공제회와 함께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로 꼽히지만 정기예금 위주의 소극적인 기금 운용 탓에 그동안 자본시장에선 존재감이 없었다. 오히려 투자 손실 사례가 알려지면서 '깜깜이 운용'이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포항공대의 이번 결정이 국내 대학기금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관심이 모이는 대목이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포항공대는 최근 대학 적립금 649억원에 학교법인의 별도 기금을 더한 1조1000억원을 민간 연기금 투자풀에 맡기기로 했다. 권오헌 포항공대 학교법인 투자재무팀장은 "포항공대가 발전하려면 기금 운용을 통한 수익 창출이 필수"라며 "저금리 시대를 맞아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렵고 자체 운용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권 팀장은 이어 "주식과 채권 등 전통 자산에서 벗어나 해외 인프라스트럭처나 부동산 같은 대체투자로 투자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포항공대의 결정에 시장은 한껏 들뜬 분위기다. 이를 계기로 기금 규모가 큰 국내 주요 대학들이 민간 연기금 투자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서다. 민간 연기금 투자풀 관계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대학들이 재간접 구조의 위탁 운용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최근 들어서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한 자문서비스를 찾는 대학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기준 일반대학 180여 개의 전체 적립금은 약 8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적립금 규모가 가장 큰 대학은 홍익대(7172억원)이며, 그다음은 이화여대(7066억원) 연세대(5209억원) 수원대(3588억원) 고려대(3437억원) 순이다. 적립금이 1000억원을 넘는 대학만 19곳에 이른다. 적립금에 포항공대처럼 법인이나 재단에서 별도로 운용하는 자금까지 합치면 국내 대학기금 전체 규모는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주요 대학들은 주로 은행 상품을 활용해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규정상 수익증권 같은 금융상품에도 투자할 수 있지만, 대다수는 자산의 90%를 원금이 보장되는 정기예금에 넣는다. 투자 전문성이 떨어져 내린 결정이기도 하나 많은 대학들이 교내 지점이나 학생용 체크카드 등 은행과 관계가 긴밀해 이자가 낮아도 이를 고집한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여기에 성과 인센티브는 없고 손실 책임만 묻는 조직 문화도 한몫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포항공대의 민간 연기금 투자풀 활용안이 모범 사례로 자리 잡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학들이 최근 몇 년간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데다 정기예금에만 투자하다 보니 기금 규모가 계속 제자리걸음"이라며 "기금이 커져야 대학 경쟁력이 생기는 만큼 하버드대나 예일대 등 해외 유명 대학의 기금처럼 국내 대학도 보다 전문화한 기금 운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시기"라고 설명했다.
민간 연기금 투자풀은 금융위 주도로 2015년 9월 중소형 연기금의 안정적인 고수익 창출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교직원공제회와 같은 대형 공제회를 포함한 각종 공제회와 사립대 적립기금, 기업 사내근로복지기금 등 1800여 개에 이르는 중소형 연기금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현재 민간 연기금 투자풀 운용 규모는 1조2000억원 정도다. 운영 방식은 이보다 앞서 2001년 기획재정부가 시행한 공적 연기금 투자풀과 비슷하다. 다만 대체투자를 진행한다는 점은 공적 연기금 투자풀과 차별화한 부분이다. 민간 연기금 투자풀은 올해부터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대체투자를 시작했다.
올 상반기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대형 신축 빌딩에
[송광섭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