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경·예탁원 공동분석
국내 증권사 중 개인고객 예탁자산 규모가 가장 많은 삼성증권. 이 증권사에서 PB교육을 담당해온 오현석 투자전략센터장은 "자산관리업 종사자들이 주식 투자자들의 고령화 문제를 매일 체감하면서 애로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27일 매일경제와 한국예탁결제원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 상장사에 투자하고 있는 개인 주주들을 연령대별로 분석해본 결과 지난해 처음으로 50대가 전체 투자자의 3분의 1인 32.8%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50대가 28.7%를 차지한 40대를 제친 것은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2002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반면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3~4%대를 유지해오던 20대 주식 투자자들은 지난해 1.7%로 쪼그라들었다.
개인투자자들의 연령대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자산 관리 분야에서 주식이 부동산이나 저축보다 손실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젊은 층의 투자 수요가 있을 것이란 가정도 이미 무너졌다. 주식 투자는 50대 이상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고, 1980~1990년대에 태어난 20·30대는 주식시장 진입조차 어려워지면서 증시는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주식시장은 고령화의 덫에 걸린 한국 경제의 우울한 예고편에 불과하다. 실제 국내 상장사의 주력 주주 연령대는 15년 만에 열 살이나 나이를 먹어 5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60대 이상 개인 주주 비중도 전체 주주의 24.9%를 차지하면서 개인투자자 네 명 중 한 명은 고령층이다. 지난 2002년 12.7%에 불과하던 고령 개미가 15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고령 개미 증가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다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시장의 활력이 떨어졌다. 시장 내 주식 거래량이 줄어든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주식 회전율은 247.15%로 2002년 265.49%보다 낮아졌다. 회전율이란 주주들 간에 얼마나 손바뀜이 많이 일어났는지를 뜻한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 1주당 2.5번 매매됐다면 15년 전에는 2.7번씩 매매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은 1500조원으로, 2002년 258조원에 비해 6배가량 커졌음을 감안하면 덩치는 커졌지만 움직임은 더뎌진 것이다.
자산을 안정적인 예금에 묶어놓는 이런 특성은 투자자 고령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연령대별로 보면 가계의 금융자산은 60대 이상에서는 크게 늘어난 반면 30·40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산 증가 속도가 더디다. 2016년 가계 금융자산을 2012년과 비교해 보면 60대 이상은 7.1% 늘었지만 30대(4.4%)와 40대(4.7%)에서는 4%대 증가에 그쳤다.
채남기 한국거래소 상무는 "1996년에 코스닥시장이 열리면서 초기에는 20·30대 투자자들이 많아 시장에 활력이 돌았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후 주식시장은 주식형 펀드 시대를 거쳐 상장지수펀드(ETF) 중심으로 바뀌어갔고, 신규 투자층은 유입되지 않으면서 구세대 위주로 투자층이 짜이면서 50대가 주력 투자층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 증권거래소가 지난 20일 발표한 2016년 주식 분포 상황 조사에 따르면 일본 주식시장의 개인 보유 비율(도쿄·나고야·후쿠오카·삿포로 주식시장 합계)은 17.1%다.
이 조사를 시작한 1970년 이래 사상 최저 수준이다. 일본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주식시장 개인투자자의 52%가 60세 이상으로 집계됐다.
한국 개미군단의 '산증인' 격인 신성호 IBK투자증권 사장은 "1980년대 말 주식시장 급등장을 맛봤던 20·30대 직장 초년생들이 지금 증시를 지탱하고 있는 50대 이상 세대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7년 당시 대우증권에서 개인투자자를 지칭하는 '개미군단'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우경제연구소에서 주식시장을 분석해왔다.
신 사장은 "요즘 20·30대는 주식보다는 빚내서 집을 사거나 전세금을 마련하다 보니 주식 투자는 여력조차 없는 것 같다"며 "투자 연령대가 높아진 만큼 투자자들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고배당주로 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2030 젊은 개미들은 주식시장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예탁결제원의 통계가 시작된 2002년 기준 2030세대의 주식 투자자(12월 결산 상장법인 개인 실질주주 기준)는 전체의 28.6%를 차지했으나 지난해 말에는 13.2%로 떨어졌
젊은 층이 주식시장을 등한시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분석이 다양했다. 취업난에 주식 투자는 꿈도 못 꾼다는 의견부터 주식시장이 전문화되다 보니 더 큰 위험을 노리고 가상화폐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미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이 코스닥을 제쳤을 정도다.
[한예경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