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초대형IB 시대 ◆
'71억1200만원 대 71억900만원.'
역사의 시작은 300만원 차이로 갈렸다. 1982년 3월 30일 동원산업이 한신증권 인수를 위한 공개입찰에 참여했을 당시 일이다. 동원산업은 경쟁자인 태평양화학을 300만원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제치고 숙원이었던 증권사 인수에 성공했다. 김재철 동원산업 회장이 원양어선을 사기 위해 모아뒀던 돈을 탈탈 털어 베팅한 결과였다. 배 값과 맞바꿔 사들인 이 회사는 이후 수차례 인수·합병(M&A) 과정을 거쳐 13일 한국 최초의 초대형 투자은행(IB) 타이틀을 따낸 한국 대표 증권사가 됐다. 1호 초대형 IB 한국투자증권 얘기다.
시작부터 간발의 차로 트로피를 따낸 한투의 성장 스토리는 증권업종에 걸맞은 승부사의 길이었다. 2004년 7월 14일 동원금융지주가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할 때도 한 끗 차이로 승패가 엇갈렸다. 당시 한투를 점찍은 회사는 동원금융지주, 칼라일, 우리금융지주 세 곳이었다. 적정 인수가로 4000억원 설과 7000억원 설이 대립하며 치열한 눈치작전이 펼쳐졌다. 김남구 당시 동원금융지주 부회장은 이 딜에 승부수를 던졌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계약이었다. 김 부회장은 인수가로 5000억원을 쓴 서류봉투와 빈 봉투를 한꺼번에 준비했다.
김재철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떨어지더라도 높이 쓰고 떨어지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빈 봉투를 들고 간 임원과 전화를 한다. 최후의 순간 그는 "비딩(응찰)을 할 때 상대방은 끝자리를 0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끝자리를 1이나 2로 만들면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한 김 회장 발언을 떠올렸다. 그래서 써낸 가격이 5412억원이었다. 칼라일이 쓴 5400억원을 12억원 차이로 제쳤다. 300만원 차이로 시작된 한국투자증권의 역사가 23년 만에 엇비슷하게 재연된 것이다. 이후 동원금융지주 소속 동원증권은 한국투자증권과 합병해 지금의 한국투자증권으로 새로 태어난다.
이후로도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업계 굵직한 역사를 주로 썼다. 2008년 싱가포르 법인을 세운 데 이어 2010년 베트남 현지 증권사를 인수해 동남아를 거점으로 '아시아 대표 투자은행'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에 돌입했다. 2014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사무소를 열었다. 인도네시아 증권사를 인수하겠다는 비전도 세워놓은 상태다. 초대형 IB로 지정됨으로써 해외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무기도 생겼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은 "한국 경제성장률이 고작 연 3%인데 베트남 시장만 해도 연 6~7% 성장한다"며 "초대형 IB로서 성장하는 국가에 올라타서 경제 성장 과실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증권업의 핵심은 모험자본 투자"라며 "일본 증권사는 이걸 못해 활력이 떨어졌지만 우
한투증권이 지난해 우리은행 지분 4%를 인수하며 숙원이었던 은행업 진출 교두보를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회사인 한국금융지주는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으로 핀테크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식으로 투자 수익을 극대화할 복안도 마련해놨다.
[한예경 기자 / 홍장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