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튜어드십 코드 논쟁 ◆
21일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로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선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개혁 수단으로 변질돼 도입되고 있어 '연금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며 "스튜어드십 코드가 용어 그대로 '선한 청지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기관투자가들의 도덕성과 투명성, 집행능력에 대한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자율지침으로, 현재 국민연금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에 맞서 22일에는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확히 같은 장소에서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필요성'이라는 정반대의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놓고 여야 간 치열한 물밑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연기금의 SC 도입을 찬성하는 측의 주된 근거는 SC가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할 것이라는 점이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시키고 경영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만큼 결국 기업가치가 높아져 주주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다. 앞서 지난 1일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는 "영국에서의 사례 분석 결과, SC 도입 후 기관투자가와 기업 간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돼 기업가치 개선 등 측면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반대론자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날 세미나를 개최한 김종석 의원은 "정부가 국민연금을 이용해 민간기업 인사와 투자에 간섭하는 등 지배력을 확장할 경우 기업 경영의 자율성과 경쟁력이 크게 훼손되고, 오히려 기업가치에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장섭 교수 역시 "기관투자가 행동주의가 시작된 지 30년 이상 흘렀지만 기업 경쟁력을 높이거나 장기적으로 수익을 높였다는 증거는 별로 확립된 것이 없다"며 "오히려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경제 전체적으로 고용 불안과 분배 악화라는 부정적 결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보건복지부는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자본시장 선진국들이 SC를 도입하는 등 SC가 세계적 추세 속에 도입되고 있으며, 해외 주요 연기금들이 SC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주주활동을 적극 수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신 교수는 이에 대해 "SC는 영국에서 처음 시작될 때부터 크게 왜곡됐고, 미국에서는 기관투자가들이 정부의 직접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립 서비스'로 갑자기 도입된 측면이 강하다"며 "한국에서는 그 이면에 대한 분석이나 논의 없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포장·변질돼 도입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개별 기업의 의사결정과 관련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신 교수는 "기관투자가의 주업무는 기업 경영과 투자를 해서 성과를 좋게 하는 것보다는 쌀 때 사서 비싸게 파는 등 트레이딩하는 것"이라며 "기업 경영을 어떻게 하면 좋게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 능력이 약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균형 잡힌 '기관-기업 관계 규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기관투자가와 경영진이 단기 주가 상승이 아니라 장기 기업가치 상승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주제안을 할 때 이에 대한 합리화를 의무화해야 한다"며 연기금의 기업가치 제고 노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장기투자자에게 투표권을 더 주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며 "기관투자가가 기업에 관여할 때엔 그 내용을 공개하도록 해 주식 투자자 간 정보취득의 공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요구했
■ <용어 설명>
▷스튜어드십 코드 :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투자한 회사의 배당이나 사외이사 선임 등 주요 결정에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기 위한 자율 지침.
[연규욱 기자 /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