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발표자로 나선 황성호 전 우리투자증권 사장이 빼어난 말솜씨와 함께 큰절을 올리면서 기습 펀치를 날렸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흡사 1960년 닉슨-케네디의 미 대통령 선거 TV토론회 때처럼 '이미지 정치'가 주요 변수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권 당선자는 1차 투표에서 무려 70%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으며 당선을 확정했다. 회원사들은 황 전 사장의 큰절보다 권 당선자의 두권의 수첩에 주목했다. 권 당선자는 발언에 앞서 수첩 두 권을 꺼내보였는데, 이 수첩에는 권 당선자가 선거 운동 기간 중 각 회원사 대표들과 나눈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두권의 수첩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는 섣불리 추측하기 어렵다. 다만 권 당선자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산적하다. 은행-증권 간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세우기, 불필요한 규제 완화 등 업계의 요구가 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4차산업 혁명 등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에도 적절히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그간의 자본시장 활성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시장은 여전히 은행산업 중심의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07년 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사도 법인·개인에 대해 모두 지급결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국회 입법 과정에서 우선 개인에 대해서만 허용하기로 한 후 법인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증권사 법인 지급결제망 허용은 금융결제원 규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이를 은행들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전임 황 회장이 내놓은 '증권회사 국내외 균형 발전 30대 과제'를 어떻게 계승할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 관련 과제가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세우기를 골자로 하고 있는 만큼 협회장이 바뀌더라도 반드시 안고 가야하는 중요한 숙제다.
아울러 금투업계는 불필요한 규제 완화를 위해 권 당선자-금융당국 간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권 당선자가 회원사의 애로사항을 듣고 금융당국에 적극 목소리를 내달라는 요구다. 관료 출신인 권 당선자가 정통 증권맨이
권 당선자는 임기 3년 동안 두권의 수첩을 항상 책상에 두고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제갈공명의 '금낭묘계(錦囊妙計)'처럼 이 두권의 수첩에도 금융투자산업의 오랜 숙원을 풀어낼 묘책이 담겨있기를 기대해 본다.
[디지털뉴스국 김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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