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건설이 8일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하겠다고 밝히면서 산업은행의 '출자회사 관리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10여 년 전 대우조선해양 매각 실패 때와 마찬가지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지 못했으며 출자 회사들의 부실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투자 전문가는 "결과적으로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며 "이번 매각 절차에서도 인수 후보를 한 곳밖에 끌어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헐값 매각 논란을 빚는 등 관리능력에 심각한 결함을 또 한 번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한 사모투자펀드(PEF) 관계자는 "PEF업계에서는 출자한 회사의 손익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한다"며 "산업은행이 대우건설의 부실을 진짜로 몰랐다면 스스로 관리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자인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관리 능력이 의심받은 사례는 예전에도 많았다. 박창민 전 대우건설 사장이 2016년 선임됐을 당시 낙하산 논란이 거세게 일었지만 산업은행은 박 전 사장이 적임자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후 박 전 사장은 최순실 의혹에 휘말려 자진 사퇴했다. 이후 금융권에서는 산업은행이 차기 사장만큼은 신중히 고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박 전 사장의 후임으로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인 송문선 사장을 낙점했고 '한결같다'는 주변의 냉소적인 평가를 감내해야 했다.
부실한 사업보고서를 둘러싼 잡음도 많았다. 한 금융사 고위 임원은 "대우건설은 몇 해 전 수천억 원의 손실을 과소 계상해 과징금 20억원을 부과받았고 분기 보고서에 대해 회계법인으로부터 '의견거절'을 당하기도 했다"며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관리를 정상적으로 하는지조차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러 문제가 반복해 터지면서 대우건설은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예비입찰에 나선 13개 건설사 중 이름을 알 만한 건설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호반건설과 함께 입찰 적격 대상자로 선정된 해외 업체 2곳은 본입찰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이번에 호반건설이 제시한 인수금액 1조6000억원이 2010년 이후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지분 인수와 유상증자 등에 투입한 3조2000억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이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우건설이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길을 걷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9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던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실사를 포기해야 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반대와 산업은행 측의 미지근한 태도 때문이었다. 당시 산업은행 측은 실사 없이 계약을 체결할 것을 한화 측에 종용했지만 한화 측은 아예 인수를 포기했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이 5조원대 분식회계를 숨기고 있었던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산업은행의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제때 주인을 찾지 못한 대우조선해양은 혈세 먹는 '블랙홀'로 전락했다. 2015년 정부에서 4조2000억원을 지원받았고 2016년에도 공적자금 7조원을 수혈받았지만 회생할 기미는 없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민간금융사와 다른 점은 출자회사가 엉망이 되더라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경영 부실의 원인을 분석해 관련된 임직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건설이 모로코에서 입은 손실은 지난주 발생한 예상하지 못한 기계 고장으로 인한 것으로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며 "연간 보고서 작성 등과 겹쳤기 때문에 즉시 통보하지 않았을 뿐 일부러 숨긴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김동은 기자 / 이승윤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