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아파트의 역설 `택배대란`

↑ 서울 성동구 A아파트 단지 앞 도로에 깔려 있는 택배를 입주민들이 수령해가고 있다.

서울 성동구 A아파트 입주민들은 최근 택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단지 내 안전을 위해 입주민 차원에서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을 통제한 것이 단초였다. 일부 기사는 배송된 택배를 단지 밖 도로에 깔아놓고 수취인이 직접 수령해가도록 요구했다. 임의로 반송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택배가 부패하거나 분실되는 등 주민 피해가 속출했고 인터넷 게시판에는 불만글이 폭주했다.
A아파트 입주민들은 택배사에 지상이 아닌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 아파트 지하주차장 중 일부 구역은 높이가 2.3m에 불과해 택배차량 진입이 불가능하다. 전문 택배사들이 사용하는 트럭은 보통 높이가 2.5~2.7m다. 입주민들은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은 수레로 배달하거나 높이가 낮은 차로 바꾸라는 입장이다. 반면 택배사들은 손수레로 이동해서는 수익성이 나오지 않으며 특정 아파트를 위해 트럭을 교체하는 것 역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입장이다.
최근 입주가 시작된 남양주 다산신도시 B아파트도 택배 때문에 입주민과 택배사들 간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 아파트는 택배회사가 입주민에게 정문으로 택배를 받으러 나오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지침을 만들어 관리사무소 명의로 공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고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되면서 갑질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입주자들이 지상 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데도 나름 이유가 있다. 아파트 단지 내부는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닌 탓에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낡은 법규 탓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행 주차장법 시행규칙상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의 높이는 바닥면으로 2.3m 이상이다. 이 높이는 1979년 관련 규칙이 처음 생긴 후 그대로다.
이를 두고 물류업계 관계자는 "택배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정해진 시간에 물량을 소화하려면 큰 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지하주차장 높이 규정이 낮다 보니까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하주차장 높이 규정에 손을 대면 건축비와 분양단가가 높아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정순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