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에 대한 기대감에도 닷컴 버블 붕괴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대외 변수 여파로 국내 주식시장이 흔들렸다. 이번에도 미국발 금리 상승과 미·중 간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과거와 달리 여전히 경기확장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따른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뒤 코스피는 3개월간 770.95에서 628.20으로 142.75포인트(18.52%) 하락했다. 하락 폭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졌는데 6개월간 30.73%, 1년간 19.72% 떨어졌다. 코스닥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회담 직후 3개월간 코스닥지수는 1434.20에서 992.50으로 441.70포인트(30.79%) 떨어졌고 6개월간 52.63%, 1년간 42.45% 하락했다. 당시 인터넷 기업을 중심으로 한 투자 열풍이 급격히 사그라들면서 국내 증시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증시가 함께 휘청거렸다. 이른바 '닷컴 버블' 붕괴였다.
그로부터 7년 뒤에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도 코스피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회담 후 3개월간 코스피는 2003.60에서 1863.90으로 139.70포인트(6.97%) 하락했고 6개월간 11.83%, 1년간 32.18% 떨어졌다. 코스닥지수 역시 3개월간 11.72% 떨어졌고 6개월간 20.40%, 1년간 50.12% 하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호재를 삼켜버린 꼴이 됐다.
이번에도 11년 만에 극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열렸지만 국내 금융시장의 반응은 예상외로 차분했다. 지난 27일 코스피는 장 초반 2500선을 돌파했지만 오후 들어 상승 폭을 반납하며 전일 대비 16.76포인트(0.68%) 오른 2492.40으로 마감했다. 코스닥지수 또한 전일 대비 7.10포인트(0.81%) 상승한 886.49로 장을 마치며 880선을 회복하는 데 그쳤다.
김재중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사례를 학습효과 삼아서 국내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며 "남북정상회담에서 더 나아가 종전 선언과 남북 간 평화협정 체결, 미·북 수교 등으로 이어진다면 증시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수 있겠지만 주요 2개국(G2) 무역전쟁 등 변수가 기대감 일부를 상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다음달로 예정된 미·북정상회담 결과 북핵 폐기가 급물살을 타게 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면서 과거 두 차례 회담 직후와 달리 이번에는 증시가 오름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때와 달리 아마존·구글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실적이 매우 양호하고 올해 글로벌 경제성장률이 3.9%로 예상되는 등 여전히 전 세계 경기가 확장 국면에 있다"며 "상승 폭은 단언할 수 없지만 코스피의 추가 상승 여력은 여전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조 센터장은 "코스피 주가수익비율(PER)이 지금도 10배 미만이라는 것은 그만큼 기업 이익도 괜찮기 때문"이라며 "이번 정상회담 이후 주식시장은 과거와 비교해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거 북한은 체제 인정과 정치 공세를 주장했지만 이번에는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이 북한과 수교한다면 러시아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북한과 국가 대 국가로서 교역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북한 내수·인프라스트럭처와 관련해 이미 중국 업체가 현지에 진출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이 큰 수혜를 보기 쉽지 않지만 전 세계 대비 50%, 미국 대비 30% 할인된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재평가되는 기회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기관과 외국인이 어떤 매매 패턴을 보일지도 관심사다.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기관과 외국인이 서로 엇갈린 행보를 보였는데 한 달 수익률로 따져보면 기관이 더 나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07년 10월 한 달
[박윤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